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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동진수리조합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일제통치, 일제탄압, 일제수탈
종류 건물
상태 변형 / 2층 건물로 일부 증축·보수되었으며, 현재는 김제지역자활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정의 1925년 8월 김제에 설립된 일제 수탈기구인 동진수리조합이 있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27.6.28 동진수리조합 인부쟁의
관련 조직 동진수리조합 
관련 인물
관련 내용 동진수리조합은 1925년 8월 19일 동진강유역에 대형 관개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29년 6월 25일 1000만원의 경비를 들여 김제·정읍·부안, 3개군 23개 면의 17,000여 정보를 관개할 수 있는 수리조합을 준공하였다. 이는 몽리면적 기준으로는 설립당시 가장 큰 수리조합이었다.

일반 농민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진행되는 수리조합의 설치와 조합원으로서 납부하게 되는 조합비의 부당함, 그리고 수리조합 공사 임금 체불 등으로 인해 크고 작은 지역민의 반대가 여러 차례 있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쟁의가 발생하였다.

첫번째 쟁의는 동진수리조합 공사 임금 체불 문제로 1927년 6월 28일에 발생하였는데, 동진수리조합공사를 맡은 인부들이 임금 800여 원을 받지 못하자 김제역전파출소에서 항의를 하였다. 1931년 7월에는 조합비를 내지 못하는 체납자 170명에게 동진수리조합에서 농토를 차압하는 등의 횡포를 자행하자 자작농들은 거의 몰락하는 단계에 이르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이 곳은 수리조합으로 사용되었다.
참고 문헌 『조선총독부관보』, 1925년 8월 25일,「고시 - 조선총독부 고시 제211호」.
『동아일보』, 1927년 7월 2일,「伊藤組襲擊, 백여명 인부가 노동임금을 아니주어」.
『동아일보』, 1927년 7월 16일,「東津水利組合의 騷動」.
『중외일보』, 1929년 6월 27일,「동진수리준공, 몽리면적 1만7천여정보」.
『동아일보』, 1931년 7월 6일,「水組費滯納者 千七百名差押處分, 金堤東
津水利組合에서 斷行, 自作農層은 거의 沒落」.
宇津木初三郞,『朝鮮の寶庫 全羅北道發展史』, 1928(경인문화사, 1989, 89~93쪽).
조승연, 「일제하 농업생산기반의 형성과 일본인 대지주의 농장경영 - 전북 김제 지역의 사례를 중심으로」,『민속학연구』6, 1999, 383-4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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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북도 김제군 김제면 요촌리
주소 전북 김제시 신풍동 491-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조선총독부관보』1925년 8월 25일자와 『동아일보』1929년 6월 27일 기사에 관련 사실이 기재되어 있으며, 『조선의 보고 전라북도발전사』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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