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신흥청년동맹 회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허름한 2층 건물에 현재 ‘좋을호노래방’이 입주해 있다.(2009) 현재는 도시개발사업으로 유실되었다. |
| 정의 | 1925년 9월부터 1926년 말까지 신흥청년동맹의 회관이 있었던 곳으로, 제1·2차 조선공산당의 주요 거점 가운데 하나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조선공산당사건 |
|---|---|
| 관련 조직 | 한양청년연맹/신흥청년동맹/서울청년회/토요회/무산자청년회/조선청년총동맹/고려공산청년회 |
| 관련 인물 | 김찬(金燦)/박일병(朴一秉)/박헌영(朴憲永)/이호(李浩)/민태흥(閔泰興)/김단야(金丹冶)/임원근(林元根) |
| 관련 내용 | 신흥청년동맹은 신사상연구회의 김찬·박일병 등이 서울청년회에 맞서기 위해 토요회의 민태흥·이호 등과 손을 잡고 북성회계의 무산자청년회를 흡수하여 1924년 2월 11일 결성한 사회주의 청년운동 단체였다. 창립 후 신흥청년동맹은 ‘사회진화의 법칙에 의거하여 신사회 건설자를 훈련·양성하며, 계급의식의 각성을 재촉하여 세계적으로 무산청년의 수양기관 설치를 기약함’을 강령으로, 신흥청년의 단결을 도모하고 출판·강연·강습·연극 등을 개최하며 청년수양에 관한 일반조사를 실시하는 등의 사업을 계획하였다. 그리고 서울청년회와 조선청년회연합회가 주도한 조선청년총동맹의 창립에 참여하는 한편, 박헌영·김단야·임원근 등을 중심으로 조선공산당의 청년전위조직인 고려공산청년회 결성 작업을 주도하였다. 1925년 4월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가 창립된 이후 신흥청년동맹은 특히 고려공청의 유력한 표현기관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1925년 11월과 1926년 6월의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공산당 검거사건으로 주요 간부들이 구속되고 일체의 집회를 금지당하면서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25년 9월 25일, 「兩會館移轉」. 『동아일보』, 1926년 11월 7일, 「新興靑年同盟」. 『동아일보』, 1927년 3월 1일, 「新興靑年委員會」. 『동아일보』, 1927년 9월 28일, 「共産黨事件의 決議 一切禁止, 신흥청년동맹의」. 『동아일보』, 1928년 11월 26일, 「新興靑年同盟 移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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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인사동 84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인사동 84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시내 관수동 92번지의 신흥청년동맹이 낙원동의 한양청년연맹과 함께 인사동 84번지 전 창문사(彰文社) 안으로 회관을 옮겼다는『동아일보』1925년 9월 25일자 기사와 인사동의 신흥청년동맹이 조선공산당의 선전기관이라는 이유로 1926년 6월 검거사건 이후 일체의 집회를 금지 당했다는 1926년 11월 7일자 기사를 통해 제1·2차 조선공산당의 표현기관이었던 신흥청년동맹의 주소지를 확인할 수 있다. 신흥청년동맹 회관 터 : ①관수동 92(1924.2), ②인사동 84(1925.9.24), ③ 견지동(1927.2), ④낙원동 210(1927.9), ⑤누하동 2(1928.11.23), ⑥옥인동 157(1929) |














신흥청년동맹 회관 터 주변
신흥청년동맹 창립 기사(『동아일보』, 1924년 2월 13일)
신흥청년동맹 회관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