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북풍회 회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식당 골목으로 바뀌어 있는데, 40여 개의 호로 분할되어 당시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
| 정의 | 화요회와 함께 제1차 조선공산당의 창립을 주도했던 사회주의 사상단체 북풍회의 회관 자리이자, 1925년 7월 구성된 화요회·북풍회·노동당·무산자동맹 4단체합동위원회의 사무소였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사회주의운동 |
|---|---|
| 관련 조직 | 북성회/건설사/정우회 |
| 관련 인물 | 김약수(金若水)/송봉우(宋奉瑀)/김종범(金鍾範)/변희용(卞熙鎔) |
| 관련 내용 |
북풍회(北風會)는 1923년 1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김약수·김종범·송봉우·변희용 등이 결성한 사회주의 사상단체 북성회의 국내 본부로 1924년 11월 조직되었다. 그에 앞서 국내로 활동무대를 옮긴 북성회(北星會) 회원들은 1923년 10월 서울청년회에 맞서 사회주의운동의 주도권을 차지할 목적으로 국내 사회주의자들과 합동하여 건설사(建設社)를 결성했다. 그러나 건설사는 다음해 북풍회가 결성되면서 해체되었고, 구성원 대부분은 북풍회에 합류하였다. 북풍회는 이후 서울청년회·화요회와 더불어 국내 3대 사상단체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사상의 보급에 힘쓰는 한편, 1925년 4월 화요회계와 함께 조선공산당을 창립하였다. 조선공산당 창립에 앞서 북풍회는 1925년 3월 화요회와의 합동을 결의한 데 이어, 다음 달 화요회 조선노동당 무산자동맹회와 4개 사상단체의 합동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집회금지로 4단체 합동대회를 열지 못하게 되자 1925년 7월 임시방편으로 4단체합동위원회를 구성하고 재동 84번지 북풍회관에 사무소를 두었다. 한편 일본의 북성회는 1925년 1월 일월회(一月會)로 개칭되었는데, 이듬해 회원들이 대거 귀국해 국내 사상단체의 통일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의 방향전환을 주도하였다. 북풍회는 1926년 4월 4단체 합동이 이루어져 정우회(正友會)가 결성되면서 해체되었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24년 12월 14일, 「北風會事務所를 赤雹團員이 襲擊」. 『동아일보』, 1925년 7월 8일, 「四個思想團體 一處所로 會合執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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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재동 84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재동 84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1924년 12월 24일자에 시내 재동 84번지 북풍회사무소를 서울청년회계의 적박단원이 습격했다는 기사가 있었고, 1925년 7월 8일자에 화요회·북풍회·노동당·무산자동맹 등 4개 사상단체의 간판을 재동 84번지 북풍회관에 모아 붙이고 4단체합동위원회를 구성했다는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














북풍회 회관 터
북풍회 조직 선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