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감고당 민창식 집터 - 6·10만세운동 격문 인쇄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국내독립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덕성여고 교정 북쪽 테니스장으로 바뀌었다. |
| 정의 | 1926년 5월 6·10만세운동에 사용할 격고문 외 4종의 격문 5만장을 인쇄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6 6·10만세운동 |
|---|---|
| 관련 조직 | 천도교청년동맹/고려공산청년회 |
| 관련 인물 | 손재기(孫在基)/권오설(權五卨)/박래원(朴來源) |
| 관련 내용 |
1926년 6월 10일 권오설은 순종황제의 인산일을 맞아 대대적인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는 고려공산청년회를 중심으로 ‘6·10운동투쟁지도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천도교청년동맹을 지도하던 박래원에게 상하이[上海]에서 가져온 운동자금 1천 5백 원을 맡기고 격문의 인쇄를 부탁하였다. 박래원은 경성일보사 직공으로 노농총동맹과 인쇄직공조합에 관여하던 민창식(閔昌植, 1899∼1938) 등과 함께 인쇄기 2대와 활자를 구입하여 5월 17일부터 감고당 안 민창식의 집에서 6·10만세운동에 사용할 격고문 외 4종의 격문 5만장을 인쇄하였다. 그리고 인쇄된 격문 5만장을 6월 3일 밤 경운동 천도교 총부 구내 손재기의 집에 비밀리에 보관토록 하였다. 그런데『개벽』지 압수사건으로 6월 6일 손재기 집에 숨겨둔 격문과 전단이 일제경찰에 발각되어, 박래원·권오설 등 운동 지도부가 체포당함으로써 고려공산청년회와 천도교청년동맹이 중심이 된 6월 10일의 거사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일제 경찰은 6월 6일 밤 안국동 26번지 감고당 안 민창식의 집을 급습하여 광 속에 감추어 둔 격문 인쇄용 인쇄기와 활자 만여 자를 압수하였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26년 6월 22일, 「京城驛頭에서 海外檄文, 感故堂에서 國內檄文: 六月事件의 眞相 梗槪 (三)」. 『동아일보』, 1926년 6월 24일, 「민족주의 각 단체와 연락계획 중에 발각: 六月事件의 眞相梗槪 (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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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안국동 26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안국동 3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에 연재된「6월사건의 진상 경개」에 관련 사실과 해당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














6.10만세운동 격문을 인쇄한 감고당 민창식 집터 - 현 덕성여고 테니스장 주변
감고당
민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