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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무산자동맹회 회관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현재 기념품 제작 골목으로 바뀌어 있다.
정의 사회주의 사상단체인 무산자동맹회의 회관이 있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무산자동맹회/무산자동지회/신인동맹회/조선고학생동우회/정우회 
관련 인물 윤덕병(尹德炳)/신백우(申伯雨)/김한(金翰)/이준태(李準泰)/이영(李英)/신일용(辛日鎔)
관련 내용 무산자동맹회(無産者同盟會)는 1922년 1월 윤덕병(尹德炳)·신백우(申伯雨)·김한(金翰)·이준태(李準泰) 등이 조직한 무산자동지회(無産者同志會)와, 같은 해 2월 이영(李英)·신일용(辛日鎔) 등이 조직한 신인동맹회(新人同盟會)가 발전적으로 통합해 같은 해 3월 31일 결성한 사회주의 사상단체이다. 1923년 당시 회원 수는 40여명이었고, 일본에 있던 조선고학생동우회(朝鮮苦學生同友會)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화요회와 북풍회가 주도한 4단체합동에 참여하여 1925년 7월 4단체 합동위원회를 구성하였고, 1926년 4월 14일 4단체합동위원회가 정우회(正友會)로 개편됨과 동시에 해체되었다.

무산자동맹회는 1922년 11월 회관을 경성부 관수동 47번지로 이전했는데, 백여 칸 되는 건물 모퉁이의 2칸 반 공간을 10여원의 임대료를 주고 회관으로 빌려 썼다고 한다.
참고 문헌 『동아일보』, 1922년 11월 20일, 「소식 - 무산자동맹회」.
첨구생(尖口生), 「까마구의 자웅(雌雄)」, 『개벽』 34호, 1923년 4월, 5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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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관수동 47
주소 서울 종로구 관수동 47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동아일보』 1922년 11월 20일자 및 『개벽』 제34호에 실린 「까마구의 자웅」이라는 기사에 당시 주소지가 경성부 관수동 47번지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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