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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6·10만세운동 추진거점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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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광성전기, 고려전기상사가 입주한 3층 건물이 현재 그 자리에 들어서 있다.
정의 6·10만세운동 당시 제2차 조선공산당 중앙위원 겸 고려공산청년회 책임비서 권오설이 거처하며 거사를 추진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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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1926 6·10만세운동
관련 조직 조선청년당(朝鮮共産黨)/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천도교청년동맹 
관련 인물 권오설(權五卨)/박민영(朴珉英)/이지탁(李智鐸)/권동진(權東鎭)/박인호(朴寅浩)/박래홍(朴來洪)/박래원(朴來源)/민창식(閔昌植)
관련 내용 1926년 6월 10일 순종황제의 인산일을 기한 대대적인 독립만세시위 계획은 사회운동가와 학생세력의 두 갈래에서 추진되었다. 이 가운데 사회운동 방면에서 거사계획을 주도한 세력은 제2차 조선공산당이었다. 4월 26일 순종황제의 승하 소식을 접한 조선공산당은 중앙집행위원회를 개최해 대대적인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고, 조선공산당 중앙위원 겸 고려공산청년회 제2대 책임비서인 권오설(1897~1930)을 총책임자로 하는 ‘6·10운동투쟁지도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권오설은 고려공산청년회의 간부인 박민영·이지탁과 함께 투쟁지도부를 구성하고 몇 차례의 회의를 통해 ① 사회주의·민족주의·종교계·청년계의 혁명분자를 망라하여 대한독립당(大韓獨立黨)을 조직할 것, ② 6월 10일을 기해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 ③ 시위방법은 연도에 시위대를 분산 배치해 격고문 및 전단을 살포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할 것 등의 투쟁방침을 세웠다.

실무 준비에 들어간 투쟁지도부는 권동진·박인호·박래홍 등 천도교 구파와 제휴하는 한편, 천도교청년동맹을 지도하던 박래원과 경성인쇄직공조합 위원장인 민창식 등과 함께 격문을 인쇄하고 지방과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중국지폐 위조사건과 『개벽』지 압수사건으로 사전에 인쇄해 놓은 격문과 전단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면서 6월 6일 박래원이 검거되고, 7일 총책임자 권오설이 체포되었고 고려공산청년회와 천도교청년동맹이 중심이 된 거사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참고 문헌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권오설외 11명 치안유지법위반」(검사신문조서), 1926, 8쪽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정보시스템.
『동아일보』, 1927년 4월 3일, 「乙未運動 이후 조선 초유의 비밀결사사건, 조선공산당·고려공산청년회 내용, 작2일 일부 해금 피고 9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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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장사동 52
주소 서울 종로구 장사동 52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2길 14
위치 고증 「권오설 검사 신문조서」와 『동아일보』 1927년 4월 3일자 조선공산당·고려공산청년회사건 피고 99명의 신상 관련 기사에 6·10만세운동 당시 권오설의 주소지가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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