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병옥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국내독립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경기여상 본관 부지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다. |
| 정의 | 신간회 민중대회사건 당시 조병옥이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9 신간회 민중대회 사건 |
|---|---|
| 관련 조직 |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신간회(新幹會)/흥사단(興士團) |
| 관련 인물 | 허헌(許憲)/김무삼(金武森)/홍명희(洪命熙) |
| 관련 내용 |
조병옥(趙炳玉, 1894~1960)은 충청남도 천안 출신으로, 공주 영명학교와 평양 숭실중학, 배재학당 대학부에서 수학하고, 1914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니아주 소재 와이오밍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18년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하여, 동 대학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미국 유학시절 흥사단과 북미대한인유학생회의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뉴욕한인회 등에 관여하며 독립운동의 진상을 미국에 널리 알리는 외교활동에 힘썼다. 1925년 귀국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안창호계 흥사단의 국내조직인 수양동우회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1927년 민족협동전선으로 신간회가 창립될 때 본부간사로 참가하였고, 1929년 복대표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 후보와 교육부장에 선임되어 광주학생사건 진상발표 민중대회를 추진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1932년 조선일보 전무 겸 영업국장에 취임했으며, 19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2년간의 예심 끝에 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풀려났다. 해방 후 한민당 결성에 참여하고, 미군정 경무부장으로 재직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내무부장관,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민의원 의원 등을 역임하고 1960년 제4대 대통령선거에 입후보 중 서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14, 1978, 84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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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중림동 331-13 |
|---|---|
| 주소 | 서울 중구 중림동 331-13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만리재로37길 30 |
| 위치 고증 | 『독립운동사자료집』14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














조병옥 집터 - 현 경기여자상업고등학교
젊은 시절의 조병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