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원태우 이토 히로부미 탑승열차 투석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한말구국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복원/ 현재 안양로 525에 위치한 표지석은 그대로 위치해 있으며 기념비가 세워지고 주변이 정돈되어 위치확인이 보다 수월하도록 정비되어 있다. |
| 정의 | 1905년 11월 22일 시흥군 안양정차장에서 원태우가 이토 히로부미가 탑승한 열차에 투석한 장소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을사조약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김종국(金宗國), 정주영(鄭周永), 이만여(李萬汝) |
| 관련 내용 |
1905년 11월 22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오전 9시 수원지방을 구경하기 위해서 열차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안양역에 잠시 정차하였다. 이때 원태우(元泰祐, 이명 元泰根, 1882~1950)가 돌을 던져 이토 히루부미가 다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원태우가 이토 히로부미가 앉은 자리를 향해 돌을 던졌고, 이로 인해 돌이 유리창을 깨고 지나가면서 파편에 이토의 얼굴이 다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시흥군수 김종국(金宗國)은 '면본관(免本官)' 되었고 경기관찰사 정주영(鄭周永)은 '중견책(重譴責)'에 처하였다. 원태우는 사건 직후 체포되어 징역 2개월에 곤장 1백대를 맞고 이듬 해에 석방되었다. |
| 참고 문헌 |
기무라 고타로,「어리석은 조선인의 폭행」, 『日露戰爭寫眞畵報』 第39卷, 博文館, 1905년 12월 8일. 「石子何來」, 『大韓每日申報』, 1905년 11월 24일, 2면 4단. '재작일 상오 9시 이등 대사가 수원등지 관람하기 위하여 전차를 탑좌하고 하거하는 로차에 안양역 근처에 잠시 정차하였더니 홀연 수괴석자가 자외투입하여 차장이 파손되고 이등대사 신체를 지나 면어 觸傷하고 동일 하오 7시에 회경하였다더라' 「緊急會議」, 『大韓每日申報』, 1905년 11월 25일, 2면 5단 '정부에서 회의를 열다함은 본보에 이미 게재하니와 그 내용을 득문한 즉 어제 이등이 수원갔다 귀로에 시흥군 안양정차장에서 어떤 인민이 투석사에 대하여 협의 후에 해 시흥군수 김중국(金宗國)씨는 면본관(免本官)하고 경기관찰사 정주영(鄭周永)씨는 중견책(重譴責)에 처할 뿐이다더라' 「원태근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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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기도 시흥군 군내면 안양리 |
|---|---|
| 주소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2동 24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일로전쟁사진화보』 39권에 실린 일본인 화가 기무라 고타로[木村光太郞]의 투석 기록화를 보면, 당시 원태우로 추정되는 인물이 열차에 돌을 던지는 장면을 그려놓은 화보가 실려있다. 또한 『대한매일신보』1905년 11월 24·25일자 기사에 안양역에 투석한 기록이 나와있고, 『駐韓日本公使館記錄』에 안양역 서북방 약 800미터 안양부근에서 북행열차가 오는 방향에서 돌을 던진 인물이 원태근(원태우 이명)임이 확인됨으로 투석지를 비정할 수 있다. |














원태우, 이토 히로부미 탑승열차 투석 기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