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문태수 피체지 - 영각사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영각사는 한국전쟁 시 화재로 멸실된 것을 이후 재건축하였으며, 규모가 크게 줄었다. |
| 정의 | 의병장 문태수가 체포당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1.8.17.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영각사에서 문태수 체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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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문태수(文泰洙, 1880~1913)는 한말의 의병장으로 경남 안의 태생이다. 본명은 태현(泰鉉)이며 태서(泰西), 태서(泰瑞)라고도 한다. 주로 무주 덕유산을 근거로 삼남 일대에서 의병항쟁을 펼쳤다. 1907년 12월 각도 의병부대가 서울을 총 공격하려고 할 때 호남군 100명을 이끌고 참가하여 13도연합 의병부대 중 호남창의대장이 되었다. 그러나 총대장인 대한관동창의장 이인영(李麟榮)이 부친상 때문에 귀향하면서 서울진격계획이 좌절되자 무주로 돌아왔다. 1908년 2월 무주주재소를 습격하다가 붙잡혔으나 탈출했다. 그 후 장수·남원을 무대로 활동하였고, 경부선 이원역 습격·방화 등의 활동을 계속했다. 11월 이후에는 무주군을 근거로 하여 금산·영동·옥천·상주·청주·보은 등지에서 활동했다. 1910년 서울로 진격하고자 했으나 중과부적으로 다시 덕유산으로 돌아와 재기를 꾀하던 중 1911년 8월 붙잡혔다. 대구감옥에서 서울로 옮겨진 뒤 1913년 2월 옥중에서 자결했다. 문태수의 체포와 관련된 자료들은 대체로 해방 이후 서술된 2차 사료들이고, 1차 문헌사료는 1911년 10월 27일자의 기사 뿐이다. 이 기사는 문태수가 토벌대의 수색이 엄중함에 따라 1911년 8월 안의군 서상면 영탑동 영각사에 잠복해 있다가 면장이 면민들을 시켜 포박케하여 체포하였다는 것이다. 그 외 대부분의 2차 사료들은 서상면장에 의해 포섭된 죽마고우인 임종두와 조한기가 문태수를 유인하여 조산마을 주막에서 술을 마셔 취하게 한 후 체포하였다는 기사이다. 무려 40년의 차이가 있으므로, 사실 관계를 따질 때는 1차 사료를 신뢰하는 것이 좋겠다. |
| 참고 문헌 |
『경남일보』, 1911년 10월 27일, 「적괴 문태수」. 김성진,『문태수연구』, 함양문화원, 1999, 327-333쪽. 김성진·추경화,『함양항일투사록』, 함양문화원, 2007, 45-9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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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안의군 서상면 영탑동 |
|---|---|
| 주소 | 경남 함양군 |
| 도로명 주소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덕유월성로 567 |
| 위치 고증 | 『경남일보』1911년 10월 27일자 기사에 문태수의 체포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문태수가 체포된 상남리 영각사는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위치이동 없이 재건축되었다. |














영각사 전경
영각사 원경
영각사 일주문
영각사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