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종진 집터 - 영주적농재건투쟁위원회 결성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김종진의 집은 없어지고, 현재 비닐하우스 한 동이 있다. |
| 정의 | 1932년 10월 5일 김종진·김명진 등이 사회주의 운동단체인 영주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위원회를 결성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안동청년동맹/신간회 안동지회/안동콤그룹 |
| 관련 인물 | 김종진/안상윤/박찬상/김계진/김용진/김명진 |
| 관련 내용 |
김종진은(1904~1952)은 1920년대 안동청년동맹 와룡지부와 신간회 안동지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1년 7월 안동콤그룹에 가입하였고, 1932년 10월 5일에는 자신의 집에서 김명진(金命鎭)·안상윤(安相潤) 등과 함께 ‘영주공산주의운동의 부활을 도모’하기 위해 영주적색농민조합재건투쟁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김종진은 적농부 위원, 김명진은 반제부 위원을 맡아 활동하면서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김종진은 12월 7일 김계진(金季鎭)을 회에 가입시키고, 김명진·김용진(金龍鎭)·박찬상(朴贊尙)과 함께 적색농민조합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세포조직을 구성하였다. 또한 이들은 김용진의 집 등에서 여러 차례 독서회를 개최하였다. 독서회는 김용진의 지도로 공산주의 이론을 연구하고, 러시아 혁명기념일이나 메이데이 등을 기념하는 활동을 펼쳤다. 1933년 5월 메이데이를 맞아 위원회 구성원들은 봉화의 적색농민조합재건위원회와 함께 공동투쟁을 벌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이 사전에 드러나면서 관련자가 체포되고, 조직은 무너지고 말았다. 김종진·김명진은 징역 2년 6월, 김계진은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
| 참고 문헌 |
「안상윤 등 18인 판결문」, 1934년 7월 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김봉호 등 12인 판결문」, 1933년 12월 2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동아일보』, 1933년 7월 15일, 「노농 직접 행동대 조직」. 강윤정, 「안동콤그룹의 조선공산당재건운동」, 『안동사학』 8, 안동사학회, 2003, 228~229쪽. 김일수 외, 『영주독립운동사』, 영주시·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2006, 331~335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영주군 평은면 수도리 29 |
|---|---|
| 주소 |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222 |
| 도로명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234번길 31-12 |
| 위치 고증 | 「안상윤 등 18인 판결문」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김종진의 후손 김한근과 무섬전통마을보존회 박종우 회장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확정하였다. |














영주적농재건투쟁위원회 관련기사(『동아일보』, 1933년 7월 15일)
김종진 집터 좌측
김종진 집터 원경
김종진 집터 좌측
김종진 집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