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영주 아도서숙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건물은 사라지고, 빈 터만 남아있다. |
| 정의 | 1928년 10월 설립되어 민족교육을 통해 영주지역 항일운동을 선도한 아도서숙이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영주청년동맹/신간회 영주지회/영주공산주의자협의회/안동콤그룹 |
| 관련 인물 | 김화진(金華鎭)/김종진(金鍾鎭)/김성규(金性奎)/김종규(金宗奎)/김계진(金季鎭)/김명진(金命鎭)/김광진(金光鎭)/김희규(金熙奎)/박찬하(朴贊夏) |
| 관련 내용 |
아도서숙(亞島書塾)은 1928년 10월 무렵 김화진(金華鎭)이 영주군 평은면 수도리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김화진은 일본 유학을 다녀와 영주청년동맹과 신간회 영주지회에서 활동하던 인물이다. 무섬마을로 불리는 수도리는 선성 김씨(宣城 金氏)와 반남 박씨(潘南 朴氏)의 동성마을이었기 때문에 학교는 이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김화진·김종진(金鍾鎭)·김성규(金性奎)·김종규(金宗奎)·김계진(金季鎭)·김명진(金命鎭)·김광진(金光鎭)·김희규(金熙奎)·박찬하(朴贊夏) 등이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들 운영위원들은 모두 영주청년동맹 회원이었으며, 일부는 신간회 영주지회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영주공산주의자협의회와 안동콤그룹과도 관련을 맺고 있었다. 학교의 명칭은 '아세아의 조선반도 내 수도리'를 의미하였고, 아동의 빈약한 교육현실 극복과 민족교육을 실시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이에 따라 아도서숙은 문맹퇴치, 우리글 교육, 민족정신 고취 등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 초 영주공산주의자협의회와 안동콤그룹 조직이 드러나면서 위기를 맞게 되었으며, 1933년 7월 일제에 의해 폐쇄되었다. |
| 참고 문헌 |
김운한, 「아도서숙기(亞島書塾記)」(필사본), 1994. 김일수 외, 『영주독립운동사』, 영주시·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2006, 299~301쪽. 조영득, 「영주 무섬마을 선성김씨 문중의 민족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 39,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1, 171~20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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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북도 영주군 평은면 수도리 |
|---|---|
| 주소 |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산6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아도서숙기」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무섬마을의 김광호와 무섬전통마을 보존회장 박종우의 증언을 통해 위치를 확정하였다. |














「아도서숙기」
아도서숙 터 우측
아도서숙 터 전경
아도서숙 터 좌측
아도서숙 터 진입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