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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의친왕 상해 망명시 은신처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민족주의 독립운동
종류
상태 멸실 / 전심사라는 사찰 뒤편 언덕으로, 현재 텃밭으로 바뀌어 있다.
정의 1919년 11월 10일 의친왕 이강이 대동단에서 계획한 상해 망명을 결행할 당시 수색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숨어 있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9.11 대동단사건
관련 조직 대동단 
관련 인물 전협/김가진/의친왕 이강/정운복
관련 내용 1919년 3·1운동 직후 대동단(大同團)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전협(全協) 등은 일제의 감시망이 좁혀와 국내활동에 제약을 받자 중국 상해로 본부를 이전할 것을 결정하고, 제1단계로 1919년 10월 상순 총재 김가진(金嘉鎭)의 상해 망명을 단행하는 한편, 제2단계로 고종황제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의 상해 망명을 추진하였다.

의친왕의 상해 망명 계획을 세운 전협은 평소 의친왕과 친분이 있는 정운복(鄭雲復)을 통해 11월 9일 의친왕을 경성부 공평동 3번지 가옥으로 불러냈다. 밤 12시경 의친왕이 도착하자 전협은 의친왕에게 상해로 가 임시정부에 참여해 줄 것을 권고하고, 10일 오전 3시경 미리 준비해 놓은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구기리 73번지 삼각산 산중 외딴집에 은신시켰다. 의친왕 일행은 그날 오후 5시경 구기리 은신처를 떠나 경의선 수색 정거장에 이르러 오후 11시경 수색역발 봉천행 열차를 탔다. 그러나 11일 오전 11시경 안동현 정거장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당함으로써 의친왕 상해 망명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참고 문헌 「토지대장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구기리 73 (현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 73)」
「(대동단사건)예심종결결정」;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6, 1988, 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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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구기리 73
주소 서울 종로구 구기동 73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대동단사건) 예심종결결정」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1919년 11월 의친왕이 상해로 망명할 당시 은신처로 나오는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구기리 73번지는 토지대장 대조 결과 현재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 73번지로 바뀐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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