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동화학교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한말구국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당시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
| 정의 | 1908년 전흥표·황상규 등이 설립하여 밀양의 항일지도자 다수를 양성한 동화학교가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연무단 |
| 관련 인물 | 전홍표(全鴻杓)/황상규(黃尙圭)/김원봉(金元鳳)/윤세주(尹世胄)/최수봉(崔壽鳳)/김상윤(金相潤)/김소지(金小池)/박소종(朴小宗)/정동찬(丁銅燦) |
| 관련 내용 | 동화학교(同和學校)는 1908년 전홍표·황상규 등이 밀양군 부내면 노하리에 있는 군관청에 창설한 사립학교이다. 이 학교는 새로운 지식의 습득을 통해 청년을 교육하고 자주독립의 애국사상을 고취하여 항일사상과 항일투사를 육성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전홍표는 동화학교 학생들에게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투쟁의 필요성을 가르쳤기에 인근 지역에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동화학교에서는 전홍표의 지도 아래 김원봉·윤세주·최수봉·김상윤 등 의열 투쟁에 앞장섰던 인물이 다수 배출되었다. 김원봉 등이 일제의 노예교육에 반대하며 동화학교에 편입하였기 때문에 동화학교는 한층 반일적인 분위기 속에서 항일사상의 심화와 항일투사로서의 성장을 담보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연무단(練武團)이라고 하는 비밀결사도 조직하는 등 향후 의열단 조직의 기초를 닦았다. 또한 3·1운동 때 밀양지역의 만세시위운동을 지도하다 체포 투옥된 김소지·박소종·정동찬 등도 동화학교 출신이었다. 이 때문에 동화학교는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사학 탄압정책에 의해 폐쇄되었고 3·1운동의 막후 역할을 한 전홍표는 일제 경찰의 체포를 피해 만주로 건너갔다. |
| 참고 문헌 |
「밀양군 부내면 내일동 지적원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1912. 『대한매일신보』, 1908년 9월 22일,「광고 - 사립 밀양 노하동 동화학교 취지서」. 밀양군,『미리벌의 얼』, 1983, 183쪽. 밀양지편찬위원회,『밀양지』, 밀양문화원, 1987, 216~217쪽. 김성준,「경남 밀양 근대교육의 요람 정진학교 연구」,『국사관논총』23, 국사편찬위원회, 1991, 164쪽. 강만길,『밀양의 독립운동사』, 밀양문화원, 2003, 19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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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밀양군 부내면 노하리 |
|---|---|
| 주소 | 경남 밀양시 내일동 477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대한매일신보』1908년 9월 22일자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밀양군 부내면 내일동 지적원도」에 표시된 학교부지를 현재의 지적도와 상호 비교하여 위치를 확인하였다. |














농협 방면에서 본 동화학교 터
동화학교 터 전면
밀양교회 방면에서 본 동화학교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