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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13도창의대진소 서울진공작전 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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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산야
상태 부분변형
정의 1907년 12월 경기도 양주에 집결한 의병들이 13도창의대진소를 조직해 서울진공작전을 펴던 중 일본군과 접전을 벌인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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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민긍호(閔肯鎬)/이강년(李康年)/권중희(權重熙)/문태수(文泰洙)/이인영(李麟榮)/신돌석(申乭石)/허위(許蔿)
관련 내용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해산 이후 해산군인들의 의병 합류로 의병투쟁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런 가운데 이은찬(李殷瓚)과 이구재(李九載)가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해산군인을 포함해 5백명의 의병을 모집한 뒤, 이인영(李麟榮)을 총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원주로 출진해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大將)에 오른 이인영은 각 도에 격문을 보내 일본의 불의를 성토하고 경기도 양주로 모일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장들이 부대를 이끌고 속속 양주로 모여들었는데, 경기도의 허위(許蔿), 황해도의 권중희(權重熙), 충청도의 이강년(李康年), 강원도의 민긍호(閔肯鎬), 경상도의 신돌석(申乭石), 전라도의 문태수(文泰洙), 평안도의 방인관(方仁寬), 함경도의 정봉준(鄭鳳俊) 등이었다.

1907년 12월 양주에 집결한 의병은 약 1만여 명(또는 8,000명)으로, 그 가운데 훈련받은 군인이 약 3천 명이었다. 전국의 의병장들은 양주에서 13도창의대진소 편성하고, 총대장에 이인영, 군사장에 허위를 선출하였다. 그리고 병력을 24진으로 나누어 서울을 향해 진군을 개시하였다. 이 때 군사장 허위는 결사대 300명을 이끌고 선두에서 동대문밖 30리 지점까지 진출하였으나, 후속부대와 연락이 끊어진 상태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부친상 소식을 접한 총대장 이인영이 지휘권을 허위에게 넘기고 낙향함으로써, 의병들은 구심점을 잃고 결국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참고 문헌 『대한매일신보』, 1909년 7월 30일, 「의병총대장 이인영씨의 약사(속)」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서울육백년사』-문화유적편-, 1987, 1326-1327쪽.
신용하, 「전국‘십삼도창의대진소’의 연합의병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1, 독립기념관, 1987, 1-45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서울 중랑구 망우동 산57-3
주소 서울 중랑구 망우동 산 57-3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76길 50-13
위치 고증 의병관련 자료에 13도창의대진소의 군사장 허위가 결사대 300명을 이끌고 동대문밖 30리 지점까지 접근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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