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신간회 본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도로로 편입되어, 기업은행 종로지점 앞 버스정류장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민족협동전선 신간회가 1929년 6월 복대표대회를 통해 허헌 집행부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민족적 정치투쟁을 모색할 당시 본부가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9 新幹會 復代表大會/신간회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허헌(許憲)/김병로(金炳魯) |
| 관련 내용 |
신간회는 120-150여 개의 지회에 2~4만의 회원을 가진 일제하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단체이자‘비타협적’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제휴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민족협동전선이었지만, 1927년 2월 창립대회 이후 일제의 집회 불허로 정기 전체대회조차 열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본부 차원의 이렇다 할 활동을 펼칠 수 없었다. 이에 신간회는 1929년 6월 복대표대회를 개최하여 기존의 회장-간사제를 중앙집행위원제로 개편하고, 중앙집행위원장에 허헌을 선임하였다. 복대표대회를 통해 창립 당시의 간부 다수가 교체되고 사회주의자들이 본부 간부진으로 대거진출한 가운데 출범한 허헌 집행부는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하여 민중대회를 계획하는 등 합법 단체라는 한계로 유보되었던 당초의‘민족적 정치투쟁’을 모색하였다. 이 무렵 회관은 탑골공원 앞 큰길 건너편에 위치한 덕원빌딩 2층이었는데, 1929년 12월 광주학생운동 진상보고를 위한 민중대회를 준비하던 중 허헌을 비롯한 간부 44명이 일제에 의해 구속되면서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이후 새로 구성된 김병로 집행부가 합법운동 노선을 고수하자, 때마침 코민테른의 방침이 좌편향의 계급노선으로 선회하는 속에서 지회를 중심으로 해소론이 확산되어 1931년 5월 전체대회에서 신간회의 해소를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신간회 운동은 비록 4년여 만에 중단되고 말았지만,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로 분화된 이래 처음으로 전개된 민족협동전선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
| 참고 문헌 |
一記者, 「2일 동안에 서울 구경 골고로 하는 法」, 『별건곤』23, 1929, 63쪽. 백관수 편, 『경성편람』, 홍문사, 1929, 99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종로2정목 45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종로 104 번지 앞 도로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경성편람』(1929) 사회단체편에 해당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














신간회 강령 및 규약
탑골공원에서 본 신간회 본부 터
신간회 강령 및 규약
신간회 본부 터 - 기업은행 종로지점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