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진주진위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갤러리아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07년 진주진위대가 군대해산령에 따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무장해제 당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07.9.20. 진주진위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해산 당함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최지환(崔志煥) |
| 관련 내용 |
경상남도 지역을 수비할 목적으로 진주에 설치되었던 지방군대인 진주진위대(晋州鎭衛隊)는 러시아식 훈련과 교육을 받은 신식군대였다. 1899년에 경남지방대를 고성군에 설치하였다가, 1900년 7월 진위대로 개칭하고 통영의 진남군(鎭南郡)으로 옮긴 후, 다시 1902년 1월 9일 진주군으로 이전하여 진주진위대가 되었다. 진영(鎭營)에 주둔했던 관계로‘진영대(鎭營隊)’라고도 불렀다. 1907년 군대해산령이 내려지자, 진주진위대는 무장해제를 거부하였다. 이에 일제는 타지의 일본군 병력을 지원받아 진주의 경찰병력과 함께 무장해제를 시도하였다. 강제해산을 앞두고 통감대리 하세가와 요시미찌[長谷川好道]는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두 차례 전보를 보내었는데, 진주진위대가 폭동을 준비하고 있어 8월 24일 진해에서 병력을 파견하여 무기와 탄약을 압수하였다는 것과, 9월 20일 경 해산할 예정이라는 등의 상세한 보고가 이루어졌다. 진주진위대를 해산하는데 앞장선 자는 진주경무서 권임(權任, 순사부장)이었던 최지환(崔志煥)이었다. 일제 말 중추원참의와 진주부회 의원을 지낸 최지환은 중대장 경(慶) 정위를 일본군 주둔지로 유인해 감금함으로써, 남은 병사들의 무장봉기를 봉쇄하고 진주진위대를 해산시켰다. 그러나 해산당한 진위대 병사들은 의군이라 칭하며 일제 관서를 습격하고 일본인 거류민들을 공격하는 등 의거를 곳곳에서 행하였다. 그 후 진위대 터는 일본군 병영으로 활용되다가, 1928년에는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해방 이후에는 금성초등학교가 들어섰다. 이후 금성초등학교가 1995년 다른곳으로 이전하였고 현재는 갤러리아백화점이 영업 중이다. |
| 참고 문헌 |
「朝鮮五万分一地形圖; 晋州」, 조선총독부, 1918. 伊作友八,『진주안내』, 진주개문사, 1914, 6쪽. 勝田伊助,『진주대관』, 진주대관사, 1940, 32-34쪽. 국사편찬위원회,『통감부문서』4, 1999, 92·9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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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진주군 대안면 |
|---|---|
| 주소 | 경남 진주시 |
| 도로명 주소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1095 |
| 위치 고증 | 1907년 8월 27일과 31일 통감대리 하세가와 요시미찌[長谷川好道]가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보낸 전보에 진주진위대 강제해산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또『진주안내』,『 진주대관』등에서 위치를 확인하였다. |














진주진위대 터에 자리잡은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1:10,000 (昭和8年修正測圖)」, 1933,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운동회 모습(1930년대)
진주진위대 터에 자리잡은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옛 교사 전경(1925)
진주진위대 터 후면
진주진위대 터 원경
진주진위대 터 우측
진주진위대 터 정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