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삼문출판사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한말구국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배재정동빌딩 B동 남쪽 ‘신교육의 발상지’ 표석이 있는 자리이다. |
| 정의 | 1888년 배재학당의 벽돌교사 반지하의 산업부실에 설치된 인쇄소로 『협성회보』와 『독립신문』 등을 인쇄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독립신문사, 감리교 선교부, 배재학당 |
| 관련 인물 | 올링거/아펜젤러/서재필(徐載弼)/윤치호(尹致昊) |
| 관련 내용 |
배재학당 교사 올링거(Rev. F. Ohlinger)의 책임하에 르네상스식 벽돌교사 반지하 산업부실에 서구식 인쇄기와 주조기를 설치하고 1888년 말 문을 연 삼문출판사(三文出版社)는 북감리회 선교부 문서선교활동의 센터였다. 삼문출판사라는 이름은 한글·영문·한문 세 종류의 활자를 갖추고 인쇄를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1889년 아펜젤러(H. G. Appenzeller)가 지은 『성교촬요』(聖敎撮要)를 출판한 것을 비롯해 1892년 말 1월부터 『더 코리안 리포지토리(The Korean Repository)』를 발행하고, 1897년 2월부터 『조선그리스도인회보』를 발간하였다. 1892년 벽돌교사 옆편에 별도의 인쇄소 건물을 신축하고, 예전 자리에는 제본소를 두었다. 이곳에서 『협성회보』와 더불어 『독립신문』을 한때 인쇄한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그 기간에 관해서는 1896년 4월 신문 창간 후 얼마동안이라는 주장과 1898년 5월 서재필이 윤치호에게 신문사를 인계하고 물러난 이후 1899년 12월 4일 폐간될 때까지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삼문출판사는 1900년 5월 배재학당 산업부에서 독립해 감리교인쇄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
| 참고 문헌 |
「배재중고등학교(정동) 교사 배치도」 배재학당·배재백년사편찬위원회, 『배재백년사, 배재학당(1885~1985)』, 1989, 38~40·286쪽. 오인환, 『100년전 한성을 누비다』, 한국학술정보, 2008, 118~12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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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한성부 서서 황화방 정동 |
|---|---|
| 주소 | 서울 중구 정동 34-5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11길 19 |
| 위치 고증 | 『배재백년사』에 ‘1887년에 최초로 세운 벽돌 교사를 헐고 그 자리에 1932년 9월 희년기념 대강당을 건축하는 공사에 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동 「배재중고등학교 교사 배치도」와 현재의 지번도를 대조해 보면 배재정동빌딩 B동 남쪽 마당이 그 자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삼문출판사(오른쪽 건물)
삼문출판사 터(사진 왼쪽 나무 아래의 표지석은 문안 수정이 필요하다)
윗사진 왼쪽 나무 아래에 있는‘독립신문사 터’표지석
삼문출판사가 있던 자리에 세워져 있는 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