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선소년총연맹 회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제칠일안식일 예수재림교 서울중앙교회가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28년 3월 사회주의 계열의 주도로 조선소년연합회를 개편해 결성한 조선소년총연맹의 회관이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조선소년연합회/천도교소년회/소년운동협회/오월회/신간회/경성소년연맹/경성소년총연맹/천도교소년연합회 |
| 관련 인물 | 정홍교(丁洪敎)/박준표(朴俊杓)/방정환(方定煥)/이원규(李元珪)/조철호(趙喆鎬)/고장환(高長煥)/연성흠(延星欽)/전백(全柏)/조문환(曺文煥) |
| 관련 내용 |
1921년 천도교소년회의 조직으로 시작된 일제하 소년운동은 1923년 4월 방정환·조철호 등이 조직한 민족주의 계열의 소년운동협회와 1925년 5월 정홍교·박준표·이원규 등이 조직한 사회주의 계열의 오월회로 양분되어 어린이날 기념식을 따로 거행할 정도로 분열된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때마침 신간회의 창립으로 민족협동전선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소년운동 단체의 통합문제가 제기되어 100개가 넘는 단체가 참가신청을 한 가운데 1927년 10월 16일 조선소년연합회 창립대회가 천도교당에서 개최되었다. 조선소년연합회는 위원장 방정환, 중앙상무서기 고장환·연성흠, 중앙집행위원 전백·조문환 외 23인으로 임원진을 구성하였다. 이로써 이제까지 분열되었던 소년운동은 통합의 전기를 마련하는 듯 했으나, 오월회 핵심인물들이 1928년 2월 16일 경성소년연맹을 창립하고 3월 25일 제2회 정기총회를 개최하여 조직체를 총동맹(일제 당국의 허가가 나지 않아 총연맹으로 개칭)으로 개편함으로써, 조선소년연합회는 자연 해소되고 말았다. 조선소년총연맹은 방정환을 비롯한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이 탈퇴한 가운데 정홍교를 위원장으로 선출하고, 군연맹과 도연맹의 조직에 착수하였다. 이후 소년운동은 좌우파의 주도권 싸움으로 혼란에 빠져 1929년부터 다시 조선소년총연맹 측과 천도교소년연합회 측이 별도의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거행하기에 이르렀다. |
| 참고 문헌 |
「(중요)단체명부」, 『소화4년 경기도 치안개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정보시스템. 일기자, 「2일 동안에 서울 구경 골고로 하는 법」, 『별건곤』 23, 1929년 9월, 61~62쪽. 신재홍, 「일제하의 한국소년운동고」, 『사학연구』 33, 한국사학회, 1981, 93~11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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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견지동 80 |
|---|---|
| 주소 | 서울 종로구 견지동 74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소화4년 경기도치안개요』에 당시 주소지가 경성부 견지동 80 시천교당내 라고 기록되어 있다. 『별건곤』 제23호 기사에도 ‘시천교당 앞 길거리에 조선식 2층집이 줄행랑같이 나란히 서 있는 이편 끝 석탄광 2층 위가 조선소년총연맹 한 칸, 그 다음에 간판 많은 2층이 서울청년회’라고 하여 당시 회관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














조선소년총연맹 회관 터 - 현 제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서울중앙교회
조선소년총동맹 기념 축하식( 『동아일보』, 1928년 10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