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천도교소년회 사무소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수운회관이 그 자리에 들어서 있다. 중앙종리원 건물은 1969년 수운회관이 건립될 때 헐려 우이동 254번지 의창수도원(봉황각)에 이전 복원되었다. |
| 정의 | 우리나라 소년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한 천도교소년회의 사무소가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소년운동 |
|---|---|
| 관련 조직 | 소년운동협회/천도교소년회 |
| 관련 인물 | 방정환(方定煥)/이정호(李定浩)/김기전(金起田) |
| 관련 내용 |
우리나라 소년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한 천도교소년회는 1921년 4월 서울에서 방정환·김기전·이정호 등이 중심이 되어 어린 사람의 인격 옹호를 표방하며 조직되었다. 천도교소년회는 창립 후 어린 사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어린이’라는 새 말을 사용하고, 소년운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촉진시키기 위해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였다. 그리고 유지들의 협조를 얻어 서울과 평양·겸이포·안주·선천·성천·울산·진주 등지에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함으로써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갔다. 1923년 4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는 한편, 조선소년군·불교소년회 등과 연합하여 조선소년운동협회 이름으로 5월 1일‘어린이날’ 기념식과 행사를 거행하였다. ‘어린이날’ 행사는 1927년부터 5월 첫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어 치러졌다. 이후 천도교소년회는 사회주의 계열이 조선소년연합회를 총연맹으로 개편해 주도권을 장악하자 1928년 4월 중앙기관으로 천도교소년연합회를 조직하고, 1930년 4월 천도교소년연합회 총본부로 개편하여 민족주의 계열의 소년운동을 이끌어 나갔다. 경운동 88번지 천도교총부 구내에는 중앙대교당과 중앙종리원, 수운기념관 등 세 채의 커다란 양옥건물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중앙종리원 건물(현 수운회관 자리)은 천도교회의 사무소로 천도교청년당을 비롯해 천도교소년회·학생회·사월회·내수단·조선농민사 등 천도교 사회운동 단체의 본부와 개벽사가 입주해 있었다. |
| 참고 문헌 |
鍾路警察署長, 「京鍾警高秘 제4668호의 2: 소년운동협회 임시총회에 관한 건」, 1924. 4. 22, 1쪽 ; 국사편찬위원회 온라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내외항일운동문서. 鍾路警察署長, 「京鍾警高秘 제14877호: 天道敎少年會 通文郵送의 건 (첨부자료 天道敎少年會 沿革)」, 1931. 12. 5, 1-3쪽 ; 국사편찬위원회 온라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내외항일운동문서. 『동아일보』, 1923년 4월 20일, 「少年運動의 新旗幟, 소년관계자가 모혀 협회조직, 오월일일을 기약하야 대선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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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경운동 88 |
|---|---|
| 주소 | 서울 종로구 경운동 88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57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1923년 4월 20일자에 서울시내 소년운동 관계자들이 4월 17일 천도교소년회에 모여 소년운동협회를 조직하고 경운동 천도교당에 사무소를 두기로 한 기사가 나오고, 종로경찰서장 명의의「소년운동협회 임시총회에 관한 건」(1924.4.22)과「천도교소년회 통문우송의 건」(1931.12.5)에도 천도교소년회의 소재지를 경운동 88번지 천도교 중앙종리원내로 기록하고 있다. |














천도교소년회 사무소 터 - 현 천도교 수운회관
천도교소년회 사무소가 있었던 천도교 중앙종리원
천도교소년회 회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