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현상윤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문화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으로 한 명이었던 현상윤이 6·25전쟁으로 인해 납북될 때까지 거주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 운동 |
|---|---|
| 관련 조직 | 조선민립대학기성준비회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현상윤(玄相允, 1893∼1950)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어려서 한학을 수학했으며, 1908년 정주 육영학교를 졸업한 후, 1909년 평양 대성학교에 입학했다. 국권상실 후 일제에 의해 학교가 폐쇄당하자, 1912년 보성중학교로 전학해 1913년에 졸업했다. 그 뒤 일본으로 건너가 1918년 와세다[早稻田]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해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사로 부임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48인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다 체포되었다가, 1920년 10월 무죄판결을 받았다. 1921년 4월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장에 취임했고, 1922년 11월 조선민립대학기성준비회 결성에 참여해 중앙집행위원을 맡았다. 해방 직후 경성대학 예과과장을 지냈고, 1946년 2월부터 보성전문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같은 해 8월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에 취임하여 근무하다가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되는 과정에서 9월에 황해도에서 폭격으로 사망하였다. |
| 참고 문헌 | 삼천리사, 『조선사상가총관』, 1933, 54쪽(『삼천리』제5권 제2호 부록).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가회동 1-35 |
|---|---|
| 주소 | 서울 종로구 가회동 1-35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98 |
| 위치 고증 | 『조선사상가총관』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














현상윤 집터
현상윤
현상윤 집터 앞에 설치된 표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