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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황성신문사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애국계몽운동
종류
상태 멸실 / 영풍문고 앞 지하철 1호선 종각역 5번 출구 앞에 기념표석이 세워져 있다.
정의 한말 『대한매일신보』와 함께 민족언론지로 활약하던 황성신문사 사옥이 있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05 을사늑약시 논설 ‘시일야방성대곡’ 게재
관련 조직  
관련 인물 남궁억(南宮檍)/장지연(張志淵)
관련 내용 『황성신문』은 독립협회운동의 한 축을 이루었던 개신유학자층을 주 대상으로 하여 1898년 9월 5일 창간한 국한문 혼용 신문이다. 창간 당시 사장은 남궁억, 주필은 장지연이었으며, 지금의 세종로 네거리 기념비전 자리에 사옥을 두고 있었다. 이후『황성신문』은 1902년 9월 지금의 소공동 조선호텔 동편 삼화빌딩 근처로 사옥을 이전했다가,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본청 자리를 거쳐 1904년 8월 종로 백목전 뒷골목 전 면주전 도가(현 영풍빌딩 북쪽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장지연이「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을 실어 을사늑약을 규탄할 당시 신문을 발행한 장소도 이 곳이었다. 『황성신문』은 1910년 폐간당할 때까지 이곳에 사옥을 두고,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논설과 보도를 통해 민족언론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였다.
참고 문헌 『황성신문』, 1904년 8월 8일,「##本행사항」.
『황성신문』, 1905년 11월 20일, 「발생사항」.
이광린, 「황성신문 연구」, 『동방학지』53, 1986, 15-31쪽.
오인환, 『100년전 한성을 누비다』, 한국학술정보, 2008, 161-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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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한성부 중서(中署) 종로(鐘路) 백목전(白木廛) 후곡(後谷) 전(前) 면주전(綿紬廛) 도가(都家) 제20통 2호
주소 서울 종로구 서린동 33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황성신문』1904년 8월 8일자 「본지고백」과 1905년 11월 20일자 『발행사항』에 해당 주소지가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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