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보안회 집회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애국계몽운동 |
| 종류 | 거리 |
| 상태 | 완전변형 |
| 정의 | 1904년 7월 보안회가 일본의 황무지개척권 요구에 맞서 반대운동을 펼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심상진(沈相震)/송수만(宋秀萬)/신기선(申箕善)/정유인(鄭裕寅) |
| 관련 내용 |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일어난 뒤 전세가 일본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자 일본은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하고, 이어 각종 이권을 탈취하는 등 경제적 침탈을 강화하였다. 6월에 나가모리[長森藤吉郎]가 황무지 개간권을 일본공사를 통해 요구하자, 유생들은 반대 상소운동을 벌였고 각 언론기관도 반대 사설을 실어 여론 형성을 주도하였다. 이때 송수만·심상진 등이 1904년 7월 13일 서울 종로 백목전(白木廛)에서 보안회(輔安會)를 발기하고, 회장에 신기선, 부회장에 정유인, 대판회장(代辦會長)에 송수만을 추대하였다. 그리고 전국에 통문을 돌려 회의 취지를 알리고 동참을 요구하였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 호응이 잇따라 서울에서는 종로 상가가 문을 닫았고 전차 운행을 중단하였다. 일제의 침략에 대한 성토와 연설 및 반대 선언문 발표가 연일 계속되자, 일본은 조선정부에 해산을 강요하고 송수만 등을 납치하였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집회를 계속하자, 정부는 일본의 황무지개척권 요구를 거절한다고 발표하였고, 보안회는 집회를 해산하였다. |
| 참고 문헌 |
『황성신문』, 1904년 7월 15일, 「宋氏演說」 윤병석, 「일본인의 황무지개척권 요구에 대하여」, 『역사학보』22, 1964, 49~69쪽. 신용하, 「구한말 보안회의 창립과 민족운동」, 『한국사회사연구논문집』44, 1994, 33~6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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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한성부 종로 백목전도가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서린동 3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황성신문』1904년 7월 15일자「송씨연설」이라는 기사에 ‘산림 천택 원야 진황지 개척사에 대하여 전의관 송수만씨 등이 재작일 종로 백목전에 회집하여 외인에게 불가차여함을 설명하고’라고 하여, 종로 백목전앞 보안회 집회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














보안회 집회 터 - 종로사거리
보안회 황무지 개척권 철회 기사(『황성신문』, 19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