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선청년회연합회 창립회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오피시아빌딩 앞 택시 정류장 주변이 그 자리에 해당한다. |
| 정의 | 1920년 12월 조선청년회연합회가 창립될 당시 회관이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조선청년총동맹/서울청년회 |
| 관련 인물 | 오상근(吳祥根)/장덕수(張德秀)/박일병(朴一秉)/윤자영(尹滋瑛)/이영(李英)/김윤식(金允植) |
| 관련 내용 |
조선청년회연합회는 3·1운동 이후 전국 각지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청년단체들의 전국적 단일조직으로 1920년 12월 2일 창립되었다. 이에 앞서 오상근·장덕수·윤자영·이영 등은 1920년 6월 28일 조선청년회연합기성회를 발기하고 전국의 청년단체를 규합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조선청년회연합회 창립 한 달여 뒤인 1921년 1월 27일 연합회의 중앙지도기관으로 서울청년회를 조직하였다. 창립후 조선청년회연합회는 1921년 3월 기관지『아성』을 창간하고, 순회강연단을 조직하여 전국의 청년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하는 데 힘썼다. 1922년 들어 김윤식 사회장 문제와 사기공산당 사건을 놓고 좌우의 대립이 일어나 그해 3월 서울청년회가 탈퇴한 이후, 조선청년회연합회는 우파 민족주의 진영의 유력한 한 축으로 민립대학설립운동과 물산장려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다가 서울청년회, 화요회계의 신흥청년동맹과 함께 청년총동맹의 결성에 참여하여, 1924년 4월 21일 조선청년총동맹의 창립과 더불어 해산하였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20년 7월 7일, 「朝鮮靑年聯合期成會의 活動과 박·강 양씨의 의련」. 『동아일보』, 1920년 9월 1일, 「朝鮮靑年會聯合期成會, 각지 청년단체의 가입을 환영」. 「聯合會 彙報」, 『아성』1, 1921.3, 85∼108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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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서대문정 1정목 128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163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92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1920년 9월 12일자 조선청년회연합기성회 관련기사와 조선청년회연합회 기관지『아성』1921년 3월호의「연합회 휘보」를 통해 연합회 창립 당시의 회관 주소지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청년회연합회 회관 터 : ①서대문정 1정목 128(1920.8), ②광화문통 209(1921.3), ③견지동 80(1923.1) |














경희궁 쪽에서 본 조선청년회연합회 창립회관 터
조선청년회연합회 활동 기사(『동아일보』, 1923년 10월 28일)
세종로 쪽에서 본 조선청년회연합회 창립회관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