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선청년총동맹 회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사회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동일 지번 내에 평화빌딩, CEO고시텔 등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조선청년총동맹 회관이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신흥청년동맹/서울청년회/조선청년회연합회/신간회/근우회 |
| 관련 인물 | 이정윤(李廷允)/신표성(愼杓晟)/정백(鄭栢)/이영(李英) |
| 관련 내용 |
조선청년총동맹은 대중 본위의 신사회 건설을 내걸고 조선청년회연합회와 서울청년회·신흥청년동맹 등의 사회주의계열 청년단체가 합동하여 결성한 청년운동단체였다. 1924년 4월 21일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열린 창립대회에 전국의 사회주의계열 청년단체들을 거의 망라한 223개 단체 대표 170명이 참석할 만큼 조선청년총동맹은 전국 사회주의 청년운동의 통합단체였다. 창립 후 조선청년총동맹은 견지동 80번지 조선청년회연합회 회관을 그대로 인계받아 사용하다가, 1925년 7월경 경성부 서대문정 2정목 7번지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1927년 4월 다시 견지동 80번지로 돌아왔는데, 1929년 12월 광주학생운동 호응투쟁 과정에서 중앙 간부들이 대거 체포되어 중앙조직이 우경화하자 지방 단체들로부터 해소론이 제기되어 신간회·근우회의 해소와 더불어 1931년 5월 사실상 해소되었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24년 4월 28일, 「靑年總同盟 執務 開始, 견지동 팔십번지에서」. 『조선일보』, 1925년 7월 31일, 「농촌으로 도라가려는 조선청총의 신계획, 농촌사업단체 조직과 수해구제, 각 전문위원회를 두어 크게 활동」. 『조선일보』, 1927년 4월 7일, 「청총 이전」. 『조선일보』, 1925년 11월 6일, 「조선청총 기념강연, 오는 칠일 오후 한시부터 서대문 한성강습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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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서대문정 2정목 7 |
|---|---|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2가 7-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조선일보』 1925년 7월 31일자와 11월 6일자에 시내 서대문정 2정목 7번지 조선청년총동맹 회관 안 한성강습원에서 제1회 신임집행위원 간담회와 러시아혁명 8주년 기념강연회를 개최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1927년 4월 7일자에 서대문정에서 견지동 80번지로 사무소를 이전한 기사가 나온다. |














조선청년총동맹 회관 터 주변
조선청년총동맹 창립 기사(『동아일보』, 1924년 4월 21일)
조선청년총동맹 회관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