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문용기 집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3·1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변형 / 현재 문용기 집은 개축을 하여 일자형 6칸 기와슬라브집으로 변형되었다. |
| 정의 | 1919년 4월 4일 익산지역 만세시위를 주동하고 시위 장소에서 순국한 문용기가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19 3·1운동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박도현(朴道賢)/장경춘(張京春) |
| 관련 내용 |
문용기(文鏞祺, 1878∼1919)는 옥구군 영명학교 교사로 1919년 4월 4일 익산 3·1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문용기는 박도현·장경춘 등 기독교 계통의 인사들과 몰래 만나 사전계획을 수립하고 3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익산장날을 기해 시가를 행진하였다. 시위 군중이 1,000여 명으로 늘어나자 일경은 소방대원과 일본인 농장 직원들을 동원하여 시위 군중에게 무차별 발포를 하고 곤봉과 갈고리로 닥치는 대로 폭행을 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문용기는 총검으로 가슴을 찔려 유혈이 낭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순국하였다. 현재 독립기념관에 그의 피 묻은 옷이 소장되어 있다. 익산 3·1운동 뿐만 아니라 인근지역 만세시위운동까지 영향을 끼친 인물로 의미가 크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이병헌,『삼일운동비사』, 시사시보사출판국, 1959, 904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3, 1971, 520∼523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자료집』6, 1973, 108쪽. 황성근·김형룡 공저,『익산시독립운동사』, 송죽문화사, 1998, 115∼121쪽. 「문용기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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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북도 익산군 오산면 오산리 310 |
|---|---|
| 주소 | 전북 익산시 오산면 오산리 322 |
| 도로명 주소 | 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관음길 15 |
| 위치 고증 | 『독립운동사』3권과「문용기 공적조서」에 관련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문용기의 조카인 문승인의 고증으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














문용기 혈의(독립기념관 소장)
문용기
문용기 집 후면 우측
문용기 집 정면
문용기 집 후면 좌측
문용기순국열사충혼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