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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파조교 6·10독립만세 선창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학생운동
종류 거리
상태 부분변형 / 개천이 복개되고 도로가 확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의 1926년 6월 10일 오전 8시 30분경 순종황제의 국장행렬이 통과할 때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 30~40명이 이선호의 선창으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격문 1천여 매를 배포함으로써 6·10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린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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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1926.6.10 6·10만세운동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이선호(李先鎬)/이병립(李炳立)/박하균(朴河鈞)/박두종(朴斗鍾)/김낙환(金洛煥)/박용규(朴龍圭)/이동환(李東煥)/곽대형(郭戴炯)/황정환(黃廷煥)
관련 내용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을 맞아 벌어진 학생들의 독립만세시위는 현재의 종로구 묘동 단성사 앞 파조교 부근에서 시작되었다. 이날 돈화문 앞에서 홍릉 앞까지 2만 4천여 명의 인파가 길가에 늘어선 가운데 8시 30분경 순종의 국장행렬이 단성사 앞 파조교 부근에 이르자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 30~40명이 이선호(李先鎬)의 선창으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격문 1천 여매를 살포하였다. 이 때 수백 명의 학생이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드니 부근에 모여있던 군중들도 이에 동조하여 만세를 불렀다.

이를 시작으로 오전 8시 45분경 관수동 부근에서 이병립(李炳立)·박하균(朴河鈞) 등 연희전문학교 학생 50여 명이, 오전 9시 30분경 을지로 경성사범학교 부근에서 YMCA학관 학생 박두종(朴斗鍾) 외 2명이, 오후 1시경 훈련원 부근에서 학생 1명이, 오후 1시 30분경 동대문 부근에서 시대일보 배달부 김낙환(金洛煥)과 청년 2명이, 오후 2시경 신설동 부근에서 학생 1명이, 오후 2시 20분경 동묘 부근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 학생 박용규(朴龍圭)·이동환(李東煥)과 중동학교 학생 곽대형(郭戴炯)·황정환(黃廷煥) 등 '통동계' 학생들이 각각 독립만세를 부르며 격문을 배포하였다.

이날 만세시위로 일제 경찰에게 현장에서 검거된 학생과 청년들은 종로경찰서에 약 150명, 동대문경찰서에 약 50명, 본정경찰서에 10여 명이었으며, 전국적으로 1천여 명에 이르렀다.
참고 문헌 「이선호 등 11인 판결문」, 1927년 4월 1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동아일보』, 1926년 6월 12일, 2면 1단, 「六月十日 朝鮮○○萬歲, 學生을 中心으로 八個所에서 勃起」.
김호일, 『한국근대학생운동사』, 선인, 2005, 226~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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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수은동 59
주소 서울 종로구 묘동 56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돈화문로 26
위치 고증 「이선호 등 11인 판결문」 및 『동아일보』 1926년 6월 12일자 기사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선호 등 11인 판결문」 등에 당시 만세시위가 시작된 곳이 경성부 수은동으로(현재의 종로구 묘동 단성사 앞 파조교 부근)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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