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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동수·김남수·김영구 3형제 순국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한말구국운동
종류 거리
상태 변형 / 선원면 더리미는 강화 갑곳에서 남쪽으로 약 1Km가량 떨어진 지역으로 강화외성이 있는 자리와 일치한다. 김동수 형제가 압송되던 중 피살 순국한 지역은 김포를 향해 가는 배가 들어오던 선착장 근처로 추정된다. 현재 강화도 기독교인에 의해 순국비가 세워져 있다.
정의 1907년 반일활동을 하던 김동수 권사 3형제가 일본 헌병에 의해 살해당한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07 헤이그밀사사건||1907 고종 퇴위||1907 한일신협약-한국군 해산
관련 조직 강화잠두교회(江華蠶頭敎會), 대한자강회(大韓自强會) 
관련 인물 김동수(金東秀), 김남수(金南秀), 김영구(金永龜), 이동휘(李東輝)
관련 내용 1905년 3월 3일 강화진위대장을 사임한 이동휘는 지방전도사인 김우제를 통하여 감리교에 입교하고 강화잠두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이동휘는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자 7월 24일 강화읍내 연무당에서 기독교도인 김동수, 김남수 형제, 허성경, 김광천, 김기약 등과 군중집회를 열고 격렬한 배일연설을 하였다. 7월 26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대한자강회총회를 열고, 30일에는 전등사에서 김동수, 허성경 등 기독교도와 해산된 군인 400명을 모아 합성친목회를 결성하고 대규모 반일집회를 열었다.
이후 8월 9일 강화군민의 봉기가 일어나자 수원의 일본군은 11일 강화에 도착하여 진압을 시작하였다. 갑곶진 전투에서 50여 명이 사살되는 등 피해가 속출하는 동안 일진회원들의 제보로 강화잠두교회가 반일운동의 ‘준동지’로 지목되었다. 일본군은 김동수, 김남수, 김영구 3형제를 압송하는 중 더리미에서 살해하였다.
참고 문헌 강화사편찬위원회, 『증보강화사』, 1983, 279쪽.
이은용, 『강화중앙교회 100년사』, 강화중앙교회, 2002, 219-251쪽.
강화군사편찬위원회,『신편 강화사』 상, 강화군, 2003, 620쪽.
반병률, 『성재 이동휘 일대기』, 범우사, 1998, 45·47·63쪽.
김성학, 「한말 강화지역 사립보창학교의 등장과 성장 : 민족과 기독교, 황실의 조우」, 『한국교육사학』 36권 3호, 2014.
김성민, 「강화지역 3·1운동의 전개와 성격」, 『한국 근현대사 연구』 22, 한국근현대사학회, 2002.
강화중앙교회(http://www.kjm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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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기도 강화군 선원면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 676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당시 정동교회 부목사였던 현순(玄楯)의 자사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강화지역 기독교인들이 세운 기념물을 통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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