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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선형평사 총본부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현재 시티파크 모텔이 들어서 있다.
정의 1926년부터 1933년 4월까지 백정들의 인권해방운동 단체인 조선형평사의 본부가 있었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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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형평운동
관련 조직 조선형평사 
관련 인물 이동환(李東煥)/장지필(張志弼)/김종택(金鍾澤)/박평산(朴平山)
관련 내용 조선형평사(朝鮮衡平社)는 일본 관서지방에서 전개된 수평(水平)운동의 영향을 받아 1923년 4월 25일 진주에서 창립된 백정들의 인권해방운동 단체이다. 조선형평사는 창립 후 백정 계급의 인권 해방과 권익 옹호, 공평한 사회의 건설 등을 목적으로 백정 기록의 호적 삭제 등을 비롯한 활동을 펼쳐 전국에 지사 11개소, 분사 67개소, 회원 40만 명의 대규모 운동조직으로 성장했다.

1924년 3월 천안에서 열린 조선형평사 혁신대회에서 형평운동의 혁신과 본부의 서울 이전을 결의함에 따라, 다음달 서울 시내 도렴동 144번지에 본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1926년 운니동 23번지에 사옥을 매입해 본부를 이전하였다. 이 무렵부터 별동기관으로 각지에 형평청년회를 조직하고, 아동교육을 목적으로 형평학우동맹과 형평여성단체를 운영하는 한편, 기관지를 발행하는 등 형평운동에 박차를 가해 나갔다.

1927년 제5회 대회에서는 명칭을 조선형평사 총본부로 바꾸었다. 1929년 4월 제7회 대회를 계기로 사회운동단체와의 협동전선을 강조하는 박평산·이동환 등 형평청년전위동맹 중심의 신파와 백정 계급의 인권 해방과 권익 옹호라는 전통적 노선을 고수하는 장지필·김종택 등 구파 사이에 노선 갈등이 깊어져 한때 해소론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1931년 4월 제9회 대회에서 신파의 해소 건의안이 부결되어 해소문제는 구파의 승리로 일단락되었지만, 이후 활동이 위축되어 침체일로를 걷다가 1937년 5월 일제의 압력으로 해체되었다.
참고 문헌 京城 鍾路警察署長, 「衡平社本部 會館問題ニ關スル件」, 1929. 8. 14, 2/3쪽; 독립기념관 소장 M/F자료(번호 1-006466-002-0120)
『동아일보』, 1924년 4월 13일, 「경성에 이전한 형평사본부, 시내 도렴동에」.
『동아일보』, 1927년 11월 23일, 「衡平社本部 中央委員會」.
『동아일보』, 1933년 5월 4일, 「衡平社本部 移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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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운니동 23
주소 서울 종로구 운니동 24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동아일보』1927년 11월 23일자에 운니동 23번지 형평사 본부회관에서 중앙위원회를 개최한 기사가 나오고, 1933년 5월 4일자에 운니동 23번지에서 운니동 68-1번지 신사옥으로 본부를 이전한 기사가 나온다. 종로경찰서장 명의의「형평사 본부 회관문제에 관한 건」(1929. 8. 14)이란 보고에 따르면, 1924년 4월 경성부 도렴동 144가 본부였고, 운니동에 회관을 매입해 입주한 것은 1926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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