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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경성부민관 폭탄 의거지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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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의열투쟁
종류 건물
상태 부분변형 / 1935년 부립극장으로 건립된 경성부민관은 해방직후 미군정에서 사용하다가 1949년 서울특별시 소유로 넘어갔으며, 1950년부터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다. 1975년 9월 국회의사당이 여의도로 이전한 뒤 시민회관이 되었고, 1976년 세종문화회관이 세워지면서 그 별관으로 사용되다가 1991년부터 서울특별시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정의 1945년 7월 24일 조문기 등이 주도한 경성부민관 폭탄의거의 현장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45.7.24 부민관폭탄의거/대의당
관련 조직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 
관련 인물 조문기(趙文紀)/강윤국(康潤國)/우동학(禹東學)/유만수(柳萬秀)/박춘금(朴春琴)
관련 내용 경성부민관(京城府民館)은 1935년 12월 태평통 1정목 60번지에 세워진 부립극장으로, 지하 1층, 지상 3층에 대강당·중강당·소강당·담화실 등을 갖춘 다목적 회관이었다. 경성부민관은 당시로는 드물게 냉난방 시설과 조명·음향시설을 갖추어 각종 극단의 공연은 물론 전시총동원체제하 각종 관변 집회의 장소로 널리 이용되었다.

경성부민관 폭탄의거를 주도한 조문기·유만수·우동학·강윤국 등 당시 20세 안팎의 열혈청년들은 1945년 5월 서울 관수동 13번지 유만수의 집에서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결성하고 항일투쟁의 기회를 엿보았다. 1945년 7월 24일 저녁 경성부민관에서 친일파 거두인 대의당(大義黨)의 박춘금(朴春琴) 일당이 주최하는 아세아민족분격대회가 열린다는 보도가 나오자, 조문기 등은 비밀회합을 갖고 대회장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유만수가 수색변전소 공사장 발파 인부로 침투해 빼낸 다이너마이트로 사제폭탄 두 개를 만들어 대회 전날 밤 대회장 뒤편 화장실 쪽에 설치하였다. 폭탄은 대회 당일인 7월 24일 밤 9시경 박춘금이 시국강연을 위해 등단한 얼마 뒤에 터졌고, 그것으로 대회는 중단되고 말았다. 경성부민관 폭탄의거는 해방을 한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기에 꺾일 줄 모르는 민족의 독립의지를 안팎에 떨친 사건이었다.
참고 문헌 국사편찬위원회,『한국독립운동사』5, 1969, 33~36쪽.
민족문제연구소,『슬픈조국의 노래』, 2005, 95~113쪽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서울육백년사』4, 서울특별시, 1981, 158~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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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태평통1정목 60
주소 서울 중구 태평로1가 60-1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5 (태평로1가 서울시의회 앞)
위치 고증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독립운동사』5권과 부민관 폭탄의거를 주도한 조문기의 회고 등을 통해 관련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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