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훈련원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국립의료원, 훈련원공원 등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조선 시기에 무과시험과 무예 훈련 등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관서로, 1907년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 해산식이 강행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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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1907년 7월 19일 고종을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일제는 7월 24일 정미 7조약(한일신협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내정까지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새로 황제에 등극한 순종을 압박하여 7월 31일 군대해산 조칙을 내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8월 1일 동대문 훈련원에서 군대해산식을 강행하였다. 그에 앞서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長谷川好道]는 군부대신 이병무 이하 각 부대 대대장급을 자신의 관저로 불러 황제의 군대해산 조칙을 전달하고, 오전 10시까지 각대 사졸을 무장해제한 채 맨손으로 훈련원에 집합시키도록 지시하였다. 시위보병 제1연대 제1대대와 제2연대 제1대대 군인들이 남대문과 서소문 일대에서 일본군과 시가전을 벌이는 속에서 10시 조금 넘어 시작된 군대해산식은 무장해제당한 상태로 집결한 한국군 장병들을 중무장한 일본군대가 포위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서울 시위대의 해산으로 시작된 한국군 해산은 8월 3일 수원 진위대 해산에서 9월 3일 북청진위대 해산에 이르기까지 1개월여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강화와 원주 진위대 장병들이 조직적인 무장봉기에 나서고, 일부 해산군인들이 의병진에 가담함으로써 의병투쟁은 일종의 국민전쟁으로 발전해 나갔다. |
| 참고 문헌 |
「경성부시가강계도」(1914);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지도』, 2006, 41쪽.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서울육백년사』- 문화유적편 -, 1987, 587쪽. 성대경, 「한말의 군대해산과 그 봉기」, 『성대사림』1, 1965, 56-6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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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
|---|---|
| 주소 | 서울 중구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45 (을지로6가 국립의료원 일대) |
| 위치 고증 | 「경성부시가강계도」(1914)에‘訓練院’이라고 해당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














훈련원 터 - 현 국립의료원 / 훈련원공원 일대
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