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선신궁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일제통치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해방 후 들어선 남산식물원이 철거되고, 현재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 |
| 정의 | 일제 말기 ‘천황제’ 주입을 위한 신사참배 강요의 구심점이 되었던 조선신궁이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일제는 ‘천황제’ 주입을 위한 관립신사 설립계획의 일환으로, 1912년부터 조선신사(朝鮮神社) 설립 예산을 편성하여 사업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수년간에 걸친 기초조사와 준비 끝에 1918년 12월 「조선신사 창립에 관한 청의(請議)」를 일본내각에 제출하여 1919년 7월 18일자 일본 내각고시 제12호로 조선신사의 창립을 확정·공포하였다. 설립 위치는 서울 남산의 한양공원으로, 제신(祭神)은 일본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아마데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와 한국을 병탄하고 1912년에 죽은 메이지천황[明治天皇]으로 정해졌다. 조선신사의 건립은 1920년 5월 27일 지진제(地鎭祭)라는 기공식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총부지 127,900여 평 위에 총공사비 156만 4,852엔을 들여 일본 신사 건축양식에 따라 정전(正殿)·배전(拜殿)·신고(神庫)·참배소(參拜所) 등 15개의 건물을 배치하고, 돌계단과 참도(參道)를 조성하였다. 1925년 6월 27일 일본 내각고시로 사격(社格)을 높여 신사의 명칭을 조선신궁으로 개칭하고, 신사에 둘 3종신기(三種神器)라는 상징물들을 일본에서 가져와 그해 10월 15일 진좌제(鎭座祭) 행사를 갖고 한국인들에게도 참배하도록 강요하였다. 이후 조선신궁은 일제 신사참배 강요정책의 상징적 구심점이 되었다. 일본 천황이 연합국 측에 항복 방송을 한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 오후 일제는 조선신궁에서 승신식(昇神式)이라는 폐쇄행사를 갖고, 9월 7일부터 해체작업에 들어가 10월 6일까지 마무리한 다음, 이튿날 나머지를 소각하고 철수하였다. |
| 참고 문헌 | 「경성시가도」(1927);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지도』, 2006, 50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
|---|---|
| 주소 | 서울 용산구 후암동 15-3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경성시가도」(1927)에 남산 서쪽기슭으로 조선신궁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














조선신궁 터
남산 조선신궁
조선신궁 조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