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봉창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해외독립운동가 국내사적지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금양초등학교 뒷담을 따라 올라간 곳에 위치해 있는데, 현재 다세대 빌라가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32년 1월 일왕 주살하기 위해 투탄 의거를 실행한 이봉창이 17세 때부터 살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32 일왕주살의거 |
|---|---|
| 관련 조직 | 대한민국임시정부/금정청년회/한인애국단 |
| 관련 인물 | 김구(金九) |
| 관련 내용 |
이봉창(李奉昌, 1901∼1932)은 서울 용산 출신으로 문창보통학교를 마친 뒤 일본인 상점 점원으로 일하다가 1919년 용산철도국에 임시인부로 들어가 역부가 되었는데, 이때 금정청년회(錦町靑年會)의 간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4년 철도국을 사직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철공소 직공 등을 하며 오사카[大阪], 도쿄[東京] 등지를 전전하였다. 1931년 1월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김구의 주선으로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에 가입한 뒤 일왕 주살을 자원, 수류탄 2개를 입수해서 12월 다시 일본으로 떠났다. 12월 22일 도쿄[東京]에 도착한 그는 1932년 1월 8일 일왕 히로히토[裕仁]가 만주국 황제 푸이[溥儀]와 도쿄 교외 요요키[代代木]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거행한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 당일 오후 2시 도쿄 고지마치구[麴町區] 밖 사쿠라다몬[櫻田門] 앞에서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일왕 행렬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일왕이 탄 마차를 정확히 식별하지 못한 데다가 거리가 멀어 일왕을 명중시키지는 못했다. 그 자리에서 체포된 이봉창은 그해 10월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0월 10일 이치가야[市谷]형무소에서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32년 1월 10일, 「大不敬事件 突發, 御鹵簿에 爆彈投擲, 陛下께옵서는 無事御還幸, 犯人은 京城生의 李奉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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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금정 118 |
|---|---|
| 주소 | 서울 용산구 효창동 118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기사를 통해 해당 주소지를 확인할 수 있다. |














이봉창이 살던 집
이봉창
이봉창 집터
효창공원에 잘못 설치된 표지석
집터 표지석이 잘못 설치된 6호선 효창공원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