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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대한천일은행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한말구국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근처 광교 남쪽 큰길가에 1909년 5월에 준공한 2층 양옥의 대한천일은행 건물(‘광통관’, 서울시 기념물 제19호, 중구 남대문로 1가 19)이 현재도 우리은행 종로지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의 1899년 창립한 근대은행으로, 창립 초기 대한제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였던 대한천일은행이 있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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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심상훈(沈相薰)/민병석(閔丙奭)/민영기(閔泳綺)/이용익(李容翊)/박경환(朴景煥)/정영두(鄭永斗)/김기영(金基永)/김두승(金斗昇)/송문섭(宋文燮)/이근호(李根鎬)/조동윤(趙東潤)/영친왕(英親王)
관련 내용 대한천일은행은 1899년(광무 3년) 1월에 대한제국 관료와 상업자본가들이 주체가 되어 설립한 우리나라 근대 금융기관의 선구가 되는 은행이다. 발기인은 군부대신을 역임한 심상훈, 농상공부대신 민병석, 육군부장 민영기, 법부협판 이근호, 전환국장 이용익, 원수부 군무국장 조동윤 등 고위관료들과 송문섭·정영두·김기영·김두승·박경환 등 실업가들이었다. 초대 은행장은 민병석이었고, 부은행장은 이근호였다.

처음에 공칭자본금 5만 6천원으로 출발했는데, 자본금의 불입이 여의치 않아 국고금 5만원을 5년 상환으로 대여 받았다. 이로 인해 1902년 3월 은행장이 영친왕으로, 부은행장이 이용익으로 바뀌었고, 은행의 성격도 황실과 깊게 연관된 특수은행의 성격으로 바뀌었다. 1905년 금융공황과 더불어 한동안 휴업상태에 빠졌다가 1906년 6월 자본금을 15만원으로 증자하고 경영진을 쇄신하여 민간은행으로 변모하였다. 이 때 일본인 재정고문 메카다[目賀田種太郞]의 알선으로 정부로부터 25만원의 자금을 무이자로 대여 받으면서 일인세력의 간섭하에 놓이게 되었다. 일제는 한국을 강제 병합한 후 구 황실과 은행간의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하고 ‘대한’이란 용어를 폐기시켰다. 1912년 2월 상호를 조선상업은행(朝鮮商業銀行)으로 바꾸면서 일인세력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참고 문헌 「경성시가전도」(1910);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지도』, 2006, 32쪽.
한국상업은행, 『한국상업은행 100년사』, 1998, 131~153쪽.
김윤희, 「1899년 대한천일은행의 설립배경과 목적 - 서울지역 금융환경을 중심으로」, 『국사관논총』96, 2001, 97~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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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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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소 ##청계천 북변 장통방 정만석계 1통 1호
주소 서울 종로구 관철동 42-4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0길 21 (관철동 주단길 입구)
위치 고증 「경성시가전도」(1910)에 보신각 남동쪽으로 천일은행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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