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선총독부 신청사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일제통치, 일제탄압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해방후 미군정청과 중앙정부의 청사로, 1986년 8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다가,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철거되었다. 현재 그 자리에 흥례문이 복원되었으며, 이 때 철거된 돔지붕 끝의 첨탑과 건축부재는 현재 독립기념관 조선총독부 부재공원에 야외 전시되어 있다. |
| 정의 | 1926년 1월 신축 이전한 조선총독부의 청사가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는 일제 식민통치의 최고기관으로, 그 수장인 총독은 행정권·군대통솔권·입법권·사법권과 이왕직(李王職) 및 조선귀족에 대한 특별권한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였다. 육군대장 또는 해군제독 가운데 임명된 총독의 권한은 중앙과 지방의 행정기관을 통해 행사되었는데, 1910년에 조직된 총독부의 중앙기구는 총독관방(總督官房)을 비롯해 총무부·내무부·탁지부·농상공부·사법부 등 1방 5부 9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3·1운동 이후에는 내무부·탁지부·농상공부·사법부를 내무·재무·식산·법무의 4국으로 개편하고 학무국을 내국으로 승격시키는 한편, 독립관청이던 경무총감부를 폐지하고 총독부 내국으로 경무국을 설치했다. 지방행정기구는 전국을 13도로 구획해 그 밑에 부(府)·군(郡)·도(島)와 말단 행정단위로 읍·면을 둔 3단계 조직이었다. 조선총독부는 1907년 2월 남산 왜성대에 지은 통감부 청사를 1910년 합병 이후 물려받아 사용하다가, 1926년 1월 경복궁 신청사로 이전하였다. 경복궁 흥례문 구역을 헐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짓겠다고 지진제(地鎭祭)를 올린 것이 1916년 6월 25일이고 건물을 완공해 이른바 시용식(始用式)을 거행한 것이 1926년 1월 4일이니까 무려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셈이다. 총독부 신청사는 일본을 상징하는 일자(日字)형 평면에 지층과 지상 4층을 올린 총건평 9,600여 평의 건물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벽돌로 기둥 사이의 벽을 채우고 외부를 화강석으로 마감한 위에 돔 모양의 중앙탑옥을 얹었다. 르네상스 양식에 바로크 양식을 절충한 절충주의 양식으로, 식민지 지배기구로서의 권위를 강조하는데 역점을 둔 건물이다. 총독부 신청사의 준공과 함께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은 궁성 동쪽으로 밀려났고 그 앞에는 광장이 조성되었다. |
| 참고 문헌 |
「경성시가도(1927)」;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지도』, 2006, 50쪽. 京城府, 『京城府史』1, 1934, 220∼224쪽. 손정목, 「조선총독부 청사 및 경성부 청사 건립에 대한 연구」, 『향토서울』48, 1989, 59∼105쪽.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세종로 1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 1 |
| 위치 고증 | 「경성시가도」(1927)에 경복궁 근정전 앞으로 조선총독부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














조선총독부 신청사 주변
조선총독부 신청사
조선총독부 신청사 앞 - 현 세종로
조선총독부 앞 도로 개수 공사
조선총독부 신청사 터 - 경복궁 흥례문 안
완공된 조선총독부 신청사
조선총독부 신청사 건설 공사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