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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손탁호텔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한말개혁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2006년 문을 연 이화100주년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정의 1895년 친미개화파가 중심이 되어 구성된 정동구락부와 그 후신이라 할수 있는 독립협회의 주요 모임 장소로 사용되었던 손탁의 사저가 있던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관련 조직 정동구락부/독립협회 
관련 인물 손탁/베베르
관련 내용 손탁(A. Sontag)은 독일에게 점령당한 알자스 로렌 출신의 프랑스계 독일인으로, 1885년 초대 러시아공사 베베르(Waeber,K.) 가족을 따라 서울에 첫 발을 내딛은 이래 1909년 고국인 프랑스로 돌아갈 때까지 25년간이나 한국에 머무르며 사교계의 꽃으로 활약하였다. 그녀는 궁내부에서 외국인 접대업무를 하며 러시아공사관과의 연결을 담당한 공로로 1895년 고종으로부터 정동 소재 1,184평 대지의 한옥 한 채를 하사받아 그 집을 내·외국인의 사교장으로 개방하였다. 이때 정동구락부가 여기서 모임을 가지면서 손탁의 집은 삼국간섭과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춘생문사건·아관파천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랑의 진원지로 급부상하였다. 그리고 1896년 7월 독립협회가 정동구락부를 모체로 공식 발족하면서부터 1897년 5월 독립관으로 입주할 때까지 변변한 사무실 한 칸 없었던 독립협회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경성부사』(1934)에 따르면, 1902년 10월 손탁은 정동 ‘살롱정치’의 주무대였던 구 가옥을 헐고 그 자리에 2층 양옥의 손탁호텔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해 손탁호텔은 대한제국 황실에서 외국 귀빈들의 접대와 숙박을 위해 거액의 자금을 들여 지어 손탁에게 경영을 맡긴 궁내부 소속의 특정 호텔이었다. 「구한국외교문서」에서는 그 이름을 한성빈관(漢城賓館:孫澤夫人家)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보통 ‘손탁호텔’로 불렸다. 손탁호텔은 1917년 이화학당에 팔려 한동안 대학과(大學科)의 기숙사 겸 교실로 사용되다가, 1922년 그 자리에 3층 프라이 홀을 지으면서 헐려 없어졌다.
참고 문헌 「손탁 귀국준비와 팔레스호텔경영지속건」, 1909년 7월 26일;『통감부문서』6,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경성부시가강계도」(1914);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지도』, 2006, 42쪽.
이경재, 『서울정도 육백년』4, 서울신문, 1993, 254-260쪽.
장규식, 『서울, 공간으로 본 역사』, 혜안, 2004, 146~151쪽.
김원모, 「미스 손탁과 손탁호텔」, 『향토서울』56, 1996, 175-220쪽.

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서부 정동
주소 서울 중구 정동 32-6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손탁귀국준비와 팔레스호텔경영지속건」이라는 문서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경성부시가강계도」(1914)에 이화학당 서북편으로 해당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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