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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양평의병 묘소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운동계열분류 의병전쟁
종류 묘소
상태 원형보존 / 단 2기, 묘 8기, 어록비 5기, 독립유공자 공적비 8기, 을미의병 추모비, 양평의병추모비, 이춘영 묘 이장 예정 표지석, 김백선 애마무덤, 김백선 묘 이장 예정 표지석이 있다.
정의 양평출신 의병장 안승우 등의 묘소를 모아 성역화 사업을 추진 중인 묘역단지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양평의병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안승우(安承禹), 이춘영(李春永), 김백선(金佰善)
관련 내용 양평의병묘역은 양동면 출신으로 ‘지평의병’을 대표하는 안승우(安承禹, 1864~1896), 이춘영(李春永, 1869~1896), 김백선(金佰善, ?~1896) 등이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분개하여 거병한 후, 제천의진을 편성하여 원주, 충주성 등을 점령하며 위세를 떨치고 장렬히 최후를 맞이한 의병장들의 묘소이다.
안승우는 친우인 이춘영 등과 함께 원주 안창리(安倉里)에서 의거의 기치를 올렸다. 이춘영을 통해 지평군수 맹영재(孟英在)의 포수 400여 명과 맹장 김백선이 의병진에 합류하였다. 첫 싸움인 단양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후 1895년 12월 영월로 들어간 안승우는 유인석(柳麟錫)을 대장으로 내세우고 제천의진을 재편성하였다. 1896년 2월 17일 충주성을 함락시킨 뒤, 충주 황강(黃岡) 싸움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전사하였다. 1963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이춘영은 안승우와 함께 거병하여 부하 김백선 등과 더불어 의병 400여 명을 받아들여 제천의진에 합류한 뒤, 충주로 이동하였다. 1896년 정월 이춘영은 호남과 영남의 요새인 조령(鳥嶺)을 지키던 중 파수장 홍대석(洪大錫)이 조령 밑에 있는 안보(安保)의 일본군 진영을 습격하여 이를 크게 대파하자 일본군을 쫓아 수백의 의병을 거느리고 달천(達川)으로 갔다가 다시 안보로 와서 일본군과 싸우다 28세의 나이로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1963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백선은 1894년 동학운동 당시 지평 감역 맹영재와 더불어 포수를 조련하여 부대를 편성하고 동학군을 물리쳤던 전력이 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보고 비분강개하던 김백선에게 이춘영이 의병을 일으키자고 권하자 기꺼이 합류하였다.
제천의진이 재편성되면서 김백선은 선봉장의 역할을 맡았다. 이후 충주성 함락의 주역이 된 김백선은 가흥전투의 패배 원인을 놓고 안승우와 불화를 빚었고, 끝내는 군율에 따라 참수되었다. 1991년 정부에서 건국공로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 문헌 장삼현,『양평의병운동사』, 양평문화원, 1996, 89-98쪽.
양평군지편찬위원회,『양평군지』, 양평군, 2003, 430-445쪽.
양평군·충남대충청문화연구소,『양평의병성역화사업보고서』, 양평군, 2003, 78-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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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
주소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 산 74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안승우 공적조서」에 명기되어 있는 안승우의 묘소가 양동면 석고리 산11번지에서 이곳 의병묘역으로 이장되었다. 묘역 내에 묘비 및 을미의병추모비가 설치되어 있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양평군청 문화유산팀장으로 관련 업무를 오랫동안 담당하였던 이강웅(현 교육혁신팀장)의 증언으로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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