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환구단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등급분류 제외(항일운동) |
|---|---|
| 운동계열분류 | 한말구국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부분훼손 / 1967년 기공하여 1970년 개관한 웨스틴 조선호텔 건물 북쪽으로 환구단의 부속 건물인 황궁우와 석고단이 옛 모습을 유지한 채 남아있다. |
| 정의 |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둥근 모양의 제천단(祭天壇)으로, 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황제위에 오른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897 고종의 황제 즉위 |
|---|---|
| 관련 조직 | |
| 관련 인물 | 고종/심순택(沈舜澤)/김규홍(金圭弘) |
| 관련 내용 |
고종이 1897년 2월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하자, 차제에 중국과 일본, 러시아의 구속에서 벗어나‘칭제건원(稱帝建元)’을 함으로써 자주독립국으로서 국가의 위상을 분명히 하자는 여론이 확산되어 나갔다. 이에 고종은 우선‘건원’을 하기로 하고 1897년 8월 15일 금년을‘광무(光武) 원년’으로 하고 8월 16일부터 거행하라는 조칙을 내렸다. 그리고 황제 즉위의 소청을 받아들여 9월 29일 장례원경 김규홍에게 환구단의 부지를 택정하도록 명하였다. 이렇게 해서 정해진 부지가 한성부 남서회현방 소공동계, 과거 청국 사신이 머물던 남별궁 자리였다. 환구단이 건립되자 10월 12일 고종은 의정대신 심순택 이하 백관을 거느리고 나아가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황제에 즉위하였다. 더불어 국호를‘대한(大韓)’으로 고치고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내외에 천명하였다. 1899년에는 환구단 북쪽에 3층 팔각지붕의 황궁우(皇穹宇)를 축조하고 신위판을 봉안하면서 태조 이성계를 태조고황제로 추존하였으며, 1902년에는 고종 즉위 40주년을 기념하는 석고단을 황궁우 옆에 세웠다. 대한제국의 성립을 알리는 상징적 장소였던 환구단은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탄한 뒤 조선총독부의 손에 넘어갔다. 일제는 1913년 환구단을 헐고 철도호텔(조선호텔)을 세우는 공사에 들어가 이듬해 9월 지상 3층, 지하 1층의 석조 건물을 완공하였다. 남별궁으로 대표되는 대청 사대외교의 상징이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탈바꿈한 데 이어, 다시 일제 침략의 상징으로 반전을 거듭한 것이다. |
| 참고 문헌 |
『고종시대사』 4, 1897년 10월 12일조, 국사편찬위원회, 1970, 424쪽. 「경성부시가강계도」(1914);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지도』, 2006, 42쪽. 정수인, 「대한제국시기 환구단의 원형복원과 변화에 관한 연구」, 『서울학연구』 27, 2006, 121-13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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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한성부 남서 회현방 소공동계 남별궁지 |
|---|---|
| 주소 | 서울 중구 소공동 87-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경성부시가강계도」(1914)에 환구단의 위치가 표기되어 있다. |














환구단 터 - 현 조선호텔
환구단
황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