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옛 부산경찰서 터 - 박재혁 의거지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열투쟁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옛 일본 영사관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오른편에 위치해있다. 현재는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20년 9월 14일 의열단원인 박재혁이 일제의 대표적 탄압기구인 부산경찰서 폭파를 시도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0 부산경찰서폭파의거 |
|---|---|
| 관련 조직 | 의열단 |
| 관련 인물 | 김원봉(金元鳳)/최천택(崔天澤) |
| 관련 내용 |
박재혁(朴載赫)은 김원봉으로부터 군자금 3백원을 받아 부산경찰서를 폭파하기로 하고, 1920년 9월 상순에 중국고서로 짐을 꾸리고 그 밑바닥에 폭탄을 감추어 상해를 떠나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거쳐 9월 13일 부산에 도착하였다. 부산에서 동지인 최천택을 만나고 다음날 14일 하오 2시 부산경찰서로 가서 하시모토[橋本秀平] 서장에게 면회를 요청하였다. 2층 서장실에서 서장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박재현은 고서를 구경시켜주는 척하며 폭탄을 투척하자 서장은 오른쪽 다리에 중상을 입고 혼절했으며 박재혁도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단식 순국하였다. 부산경찰서는 1874년 관리청에서 일본 거류민에 대한 경찰업무를 관장하였다. 이후 1890년 본정에 경찰청사를 두었다가 1897년 금평정 2번지로 이전했고 1905년 경찰청사를 신축했다. 1906년 부산이사청경찰서로 개칭되고, 1907년 부산경찰서로 개칭되었다. 1924년 6월 부산부 영정 1정목 3번지로 이전하였고 1957년 중부산경찰서로 개칭되었다가 1963년 중부경찰서로 개칭되었다. |
| 참고 문헌 |
「부산항 시가 및 부근지도」, 1903. 柳田久太郞,「 한국부산항시가명세도」, 1907. 釜山府協贊會,『釜山港勢一斑』, 釜山府協贊會, 1917, 4쪽. 『동아일보』, 1921년 3월 15일, 「釜山署 爆彈犯人 박재혁의 공판」. 『조선총독부관보』, 1924년 6월 18일, 「지방청공문-경상남도 고시 제53호」. 川島喜彙,『신부산대관』, 부산출판협회, 1935, 63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독립운동사』7, 1976, 317∼318쪽. 부산시사편찬위원회,『부산시사』, 부산시사편찬위원회, 1989, 46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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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상남도 부산부 금평정 2 |
|---|---|
| 주소 | 부산 중구 동광동2가 10-5 |
| 도로명 주소 | 부산광역시 중구 광복로85번길 15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1921년 3월 15일자에 관련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총독부관보』1924년 6월 18일자 및 『부산항세일반』과「부산항 시가 및 부근지도」등를 통해 당시 주소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왼쪽 일본거류민 사무소, 중앙 부산이사청, 오른쪽 부산경찰서
부산경찰서(1934)
부산경찰서 옛지도(「한국부산항시가명세도」, 1907)
옛 일본영사관(옛 부산부청 터)
옛 부산경찰서 터 전면
옛 부산경찰서 터 측면 계단
옛 부산경찰서 터 정면
박재혁 의거 보도기사(『부산일보』호외, 1920년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