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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좌 터 - 형평사 창립축하식 개최지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진주극장은 멸실되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으며, 최근까지 극장을 포함한 대형쇼핑몰이 영업중이었으나 현재는 폐업상태다. 옛 진주극장 사진과 비교했을 때 도로, 터 등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다.
정의 1923년 5월 13일 형평사 창립축하식을 개최한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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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관련 조직 형평사/형평청년전위동맹/대동사 
관련 인물 장지필(張志弼)/이학찬(李學贊)/신현수(申鉉壽)/강상호(姜相鎬)/천석구(千錫九)
관련 내용 형평사(衡平社)는 1923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조직된 백정인권을 위한 사회운동단체이다. 계급을 타파하고 백정에 대한 모욕적인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장려하여 백정도 참다운 인간이 되게 한다는 것이 그 설립 목적이다.

백정 출신의 장지필(張志弼)·이학찬(李學贊) 등이 사회운동가 신현수(申鉉壽)·강상호(姜相鎬)·천석구(千錫九) 등과 함께 1923년 4월 25일 진주청년회 회관에서 형평사 발기회를 개최하였다. 같은 해 5월 13일 진주좌(晋州座)에서 개최된 형평사 창립축하식은 진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는데, 천대받는 백정들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형평운동이 진주 최대의 공공장소에서 벌어졌다는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이를 계기로 형평사가 전국적 규모의 사회운동단체가 되었다는 역사적 의미도 지닌다. 이를 통해 창립 1년 만에 전국적으로 68개 지사와 분사가 조직될 정도로 사회 각층으로부터 많은 성원을 받았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온건과 혁신의 파벌투쟁에, 사회주의자들이 주축이 된 급진파까지 가세하면서 형평사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특히 1931년 4월의 형평사 해소논쟁과 1932년 12월의 형평청년전위동맹사건은 형평사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결국 1935년 4월 제13회 전국대회에서 형평사의 명칭을 대동사(大同社)로 개칭하였는데, 이에 따라 초창기의 인권해방이라는 목표도 퇴색하고 단지 백정계급의 경제적 이익단체로 변모함과 동시에 일제에 영합하는 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진주좌는 1922년 11월 11일 준공되어, 1923년 1월 개관하였다. 이후 1937년 728명을 수용할 수 있는 2층 벽돌 구조의 진주극장으로 바뀐 이래 수차례에 걸친 개보수와 재건축을 거쳐, 1996년 2월에 현대식 건물로 재건축되었다. 2004년 12월 대형 쇼핑몰인 몰에이지1030이 들어섰으나, 현재는 폐업상태다.
참고 문헌 「토지대장」.
『동아일보』, 1923년 5월 12일, 「형평사 발기회, 차별철폐를 절규하야 진주에 일어난 새 단체」.
『조선일보』, 1923년 5월 19일, 「형평사 축하식의 성황, 각지 대표와 내빈이 많이 모이어 전에 없던 대성황으로 무사 폐회」.
勝田伊助, 『晋州大觀』, 晋州大觀社, 1940, 38쪽.
고숙화,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32)형평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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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대안동
주소 경남 진주시 대안동 13-13
도로명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대로 1057
위치 고증 『동아일보』 1923년 5월 12일자 및 『조선일보』 1923년 5월 19일자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진주대관』에 진주좌의 후신이 진주극장임을 밝히고 있어, 「토지대장」을 통해 진주극장의 위치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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