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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제주 유배지-김시황 집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민족주의독립운동
종류 가옥
상태 변형 / 문이 잠겨 있어 내부 확인이 불가능하다. 외관(지붕)에 대해서는 수리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정의 이승훈이 안악사건으로 제주도로 유배되어 1911년 5월부터 10월까지 거주하던 곳이자,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회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김시황이 살았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10.12 안악사건(안명근사건), 1911.9 데라우치 조선총독 암살음모사건(105인사건)
관련 조직  
관련 인물 이승훈(李昇薰), 김시황(金時璜)
관련 내용 남강(南岡) 이승훈(李昇薰, 1864~1930)은 1911년 5월 안악사건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안악사건은 1910년 12월 안명근(安明根) 등이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고자 만주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기지 창건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황해도 안악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된 사건(일명 안명근사건)이다.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이승훈은 당시 제주읍내 성내교회의 이기풍(李基豊) 목사와 교유하면서 교회부설 영흥학교 육성에 도움을 주었다. 제주도 교육과 산업 발전, 그리고 조국독립의 길을 역설하는 등 구국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유배 6개월 만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조선총독 암살음모사건(일명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경성감옥으로 이송, 5년간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민족대표 33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3년 간의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오산학교 경영, 민립대학 설립운동, 물산장려운동, 동아일보 사장 등을 역임하며 교육자, 독립운동가, 신앙인으로 삶을 살았다.
한편, 이승훈이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거주하던 집은 본래 정의군수를 지낸 조천리 김희수가 지은 집으로, 그의 손녀인 김의남(金義男)이 김시황(金時璜, 1909~1956)과 결혼하면서 김시황의 집이 되었다. 김시황 역시 조천리 출신으로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를 다니던 중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금고 4월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참고 문헌 『중외일보』, 1930년 5월 10일 6면 1단, 「남강 이승훈씨 심장병으로 장서」.
『중외일보』, 1930년 5월 13일 3면 6단, 「교육에 무실역행, 무관학교로 제주유배」.
『중외일보』, 1930년 5월 14일 3면 5단, 「삼일운동에 또 투옥, 최후로 오산재단 완성」.
『민중일보』, 1945년 11월 9일 1면 8단, 「지사의 추억, 이승훈씨」.
「김시황 수형인명부」, 광주지방법원, 1930년 3월 31일.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9, 1977, 555~558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13, 1977, 240·248·250쪽.
남강문화재단, 『남강 이승훈과 민족운동』, 1988.
김문규, 『조천읍지』, 제주문화, 1991, 426쪽.
김찬흡, 『제주항일인사실기』, 북제주군, 2005, 444~445쪽.
북제주군, 『북제주군지』 하, 2006, 567~5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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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전라남도 제주도 신좌면 조천리 2473-1
주소 제주 제주시 조천읍 조천9길 21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중외일보』1930년 5월 13일자와 『남강 이승훈과 민족운동』및 『제주항일인사실기』∙『북제주군지』하권 등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승훈 제주 유배지는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회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김시황이 살았던 집으로 「김시황 수형인명부」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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