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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선극장 터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문화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현재 종로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정의 토월회의 신극 공연무대이자 개봉영화관이었던 조선극장이 있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29.12 신간회 민중대회사건
관련 조직 토월회/신간회 
관련 인물 황원균(黃元均)/김동준(金東駿)
관련 내용 조선극장(朝鮮劇場)은 황원균(黃元均)이 동양생명보험 경성지부장 야자와[矢澤銀次郞]의 자본을 끌어들여 엘리베이터에 식당, 오락실까지 갖춘 700여 석 규모의 최신식 3층 벽돌건물을 신축하고 1922년 11월 개관하였다. 처음에는 영화 상영을 위한 영화상설관으로 허가를 받았으나 건축 도중에 연극 상연에도 지장이 없도록 무대를 확장한 연극·영화 겸용극장이 되었다. 조선인 관람객을 전문으로 하여 조선연극을 상연할 것을 표방하고 극장 사상 최초로 가족석까지 만든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경영주 황원균과 자본주 야자와 사이에 분규가 일어나 소유주와 경영주가 10여 차례나 바뀌는 어려움을 겪다가 1936년 6월 대형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다.

조선극장은 영화관 최초로 발성영화를 상영하는 등 서양 영화 개봉관으로서도 주가를 높였지만, 그보다는 각종 명창대회와 신극단체의 단골무대로서 우리 문화운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1923년 9월 토월회(土月會)가「카츄샤」를 상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며 신극운동의 횃불을 올린 곳도 여기였다. 또한 1929년 12월 신간회의 민중대회 사건 당시 김동준(金東駿 ; 일명 金武森)이 일제를 규탄하는 전단을 뿌린 곳이기도 하다.
참고 문헌 백관수, 『경성편람』, 홍문사, 1929, 231쪽.
『동아일보』, 1922년 11월 6일,「朝鮮劇塲 開演, 금일 정오부터 개시」.
『동아일보』, 1936년 6월 12일,「白晝 仁寺町 大火, 附近一帶大混雜, 昨晝, 上映中 發火, 朝鮮劇場 全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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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인사동 130
주소 서울 종로구 인사동 130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경성편람』(1929)을 통해 당시 주소지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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