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서북학회 회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애국계몽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건국주차장으로 바뀌어 있다. 1970년대에 철거된 당시 회관 건물은 광진구 화양동 건국대학교 구내로 이전 복원되어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
| 정의 | 1908년 1월 평안도·황해도·함경도 출신 인사들이 서울에서 설립한 교육계몽운동 단체인 서북학회의 회관이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서우학회/한북흥학회/서북학회/서우학교/한북학교/서북협성학교/오성학교/협성학교/협성실업학교 |
| 관련 인물 | 정운복(鄭雲復)/강윤희(姜玧熙)/김달하(金達河)/이동휘(李東輝)/안창호(安昌浩)/박은식(朴殷植)/이갑(李甲)/유동열(柳東說)/최재학(崔在學) |
| 관련 내용 |
서북학회는 평안도·황해도 출신 인사들에 의해 조직된 서우학회(1906년 10월 창립)와 함경도 인사들에 의해 조직된 한북흥학회(1906년 11월 창립)가 1908년 1월 통합하여 발족시킨 학회였다. 회원 수는 2,500명 정도로 추산되며, 신지식층과 신흥상공인층 등 평민 출신 신흥중간계급이 주축을 이루었다. 정운복(鄭雲復)·강윤희(姜玧熙)·김달하(金達河)·이동휘(李東輝)·안창호(安昌浩)·박은식(朴殷植)·이갑(李甲)·유동열(柳東說)·최재학(崔在學) 등이 임원을 맡아 활약하였으며, 교육을 통한 국권회복과 민권신장을 표방하며 학보 간행, 계몽 강연, 교사 양성 등의 사업을 벌였다. 특히 학교 설립에 필수적인 교사양성을 위해 서북학회는 출범과 더불어 종래 두 학회의 교사양성기관인 서우학교와 한북학교를 합동하여 서북협성학교를 설립하였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 서북학회는 1910년 9월 강제 해산당할 때까지 서북지방 각 군에 31개의 지회와 69개의 학교를 설립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한성부 중부 교동 29통 2호(현 종로구 낙원동 280번지)는 서북학회 출범 당시 회관이 있었던 곳이다. 서북학회는 1908년 4월 이곳의 옛 건물을 헐고 회관을 신축하는 공사에 들어가, 순수한 민간의 힘으로 이듬해인 1909년 10월 3층 양옥의 회관을 준공하였다. 서북협성학교도 이곳에 교사를 두었다. 서북학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당한 이후 회관 건물은 서북 5도대표자 명의로 1910년 10월 설립한 오성학교와 그 후신인 협성학교(1922)·협성실업학교(1927)의 교사(校舍)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 건국대학교가 이곳에서 문을 열었다. |
| 참고 문헌 |
『서북학회월보』 1, 1908년 6월, 「(판권지)회원주의」. 『서북학회월보』 2, 1908년 7월, 「서북학회역사」, 3~4쪽. 『서북학회월보』 17, 1909년 11월. 「본회관의 촬영」, 1~2쪽. 장규식, 『서울, 공간으로 본 역사』, 혜안, 2004, 40~42·193~198쪽. 이송희, 「한말서북학회의 애국계몽활동」상, 『한국학보』31, 1983, 82~10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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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한성부 중부 교동 29-2 |
|---|---|
| 주소 |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0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4길 17 (낙원동 건국주차장) |
| 위치 고증 | 『서북학회월보』 1호의 「회원주의」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서북학회월보』 2호의「서북학회역사」와 17호의「본회관의 촬영」 등을 글을 통해 관련 사실과 당시 회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서북학회월보』창간호
서북학회 회관 터 - 현 건국주차장
건국대학교 교내에 이전 복원한 서북학회 회관
낙원상가 앞 삼일로 변에 설치된 표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