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호남창의회맹소 전투지 - 금성산성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병전쟁 |
| 종류 | 산야 |
| 상태 | 원형보존 / 산이기에 전체적인 지형은 변함이 없다. |
| 정의 | 1908년 1월 말 기삼연이 이끄는 호남창의회맹소의 본진이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패배한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 |
| 관련 인물 | 기삼연(奇參衍)/김태원(金泰元)/이남규(李南奎)/김용구(金容球)/이철형(李哲衡) |
| 관련 내용 |
1908년 1월 말 기삼연이 이끄는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의 본진은 혹한을 피하고 진영을 정비하기 위해 담양의 금성산성에 머물다가, 이를 추적한 일제 군경에게 기습당하였다. 금성산성 전투에서 의병 약 30명이 전사하였으며, 부상당한 의병도 30여 명이나 되었다. 기삼연은 발에 지병이 있어서 행군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금성산성에서 가까운 전북 순창군 복흥면 구수동의 친지집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일본군 추격대가 이곳까지 쫓아와 집안을 포위한 끝에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곧장 광주로 압송되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김태원(金泰元) 의병부대가 기삼연을 구출하기 위해 추격대를 편성하여 경양역(景陽驛)까지 뒤쫓았으나 이미 지나간 후여서 수포로 돌아갔다. 의병들의 구출작전을 두려워한 일제는 기삼연을 재판도 거치지 않은 채 광주천변에서 불법적으로 총살하였다. 이와 같이 금성산성은 기삼연이 이끄는 호남창의회맹소의 최후 전투지로 의미가 있다. |
| 참고 문헌 |
「報告」제11호, 『內閣各道來報』1, 1908년 3월 23일(규 17982-4, 1908). 전라남도 경무과, 『전남폭도사』, 전남일보인서관, 1913, 35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1-의병항쟁사, 1970, 596-599쪽.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2-의병항쟁사자료집, 1971, 629·633·651쪽. 이항복, 『백사선생문집』2, 경인문화사, 1988, 264-266쪽. 홍순권, 『한말호남지역 의병운동사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4, 98-114쪽. 영광향토문화연구회, 『의병실기』, 영광향토문화연구회, 1988, 41쪽. 담양군, 『의향의 고장, 담양』,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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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전라남도 담양군 고지산면 금성 |
|---|---|
| 주소 | 전남 담양군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기삼연실기』, 『성재기삼연선생전』, 『의향의 고장, 담양』등에 관련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금성산성 일대에 의병들이 주둔하고 전투한 상세 내용이 있다. |














금성산성 호남창의회맹소 전투지 원경
금성산성 호남창의회맹소 전투지 좌측
금성산성 호남창의회맹소 전투지 정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