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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화요회 회관 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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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사회운동
종류 건물
상태 멸실 / 탑골공원 뒤편으로, 현재 대양목재합판 가건물이 들어서 있다.
정의 서울청년회와 더불어 당시 사회주의 운동을 양분했던 화요회가 조선공산당을 창립할 무렵인 1925년 4월부터 회관으로 사용했던 곳

관련정보

관련정보
관련 사건 1925.11 제1차 조선공산당사건
관련 조직 화요회/신사상연구회/건설사/북풍회/신흥청년동맹/조선노동연맹회/서울청년회/조선노농대회준비회/조선노동총동맹/조선공산당/조선노동당/무산자동맹회/고려공산청년회/정우회 
관련 인물 홍증식(洪증植)/홍명희(洪命熹)/윤덕병(尹德炳)/박헌영(朴憲永)
관련 내용 사회주의 사상운동단체 화요회(火曜會)는 1923년 7월 홍증식(洪증植)·홍명희(洪命熹)·윤덕병(尹德炳) 등이 결성한 신사상연구회(新思想硏究會)에서 출발하여, 1924년 11월 명칭을 화요회로 바꾸고 연구단체에서 행동단체로 성격을 전환하였다. 그에 앞서 신사상연구회는 건설사(建設社, 1924년 11월 北風會로 개칭)와 제휴하여 1924년 2월 청년운동단체로 신흥청년동맹(新興靑年同盟)을 조직하고, 조선노동연맹회를 주축으로 서울청년회 측의 조선노농대회준비회를 끌어들여 1924년 4월 조선노동총동맹을 결성하면서 사회주의 운동의 헤게모니를 장악해 나갔다. 명칭을 바꾼 이후 화요회는 조선공산당 창립을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1925년 2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를 발기하고, 이어 북풍회·조선노동당·무산자동맹회와의 '4단체 합동' 결의를 이끌어냈다.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와 4단체합동대회는 일제의 집회금지로 회합에 이르지 못했으나, 화요회는 그 같은 정지작업을 바탕으로 4월 17일과 18일 아서원과 박헌영(朴憲永)의 집에서 비밀리에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를 조직할 수 있었다. 이후 화요회는 1925년 11월 제1차 조선공산당사건(일명 신의주사건)으로 주요 인물이 검거되어 활발한 활동을 펴지 못하다가, 1926년 4월 4단체합동위원회(1925년 7월 결성)가 정우회(政友會)로 공식 출범함으로써 해체되었다.

1923년 7월 신사상연구회로 출발할 당시 화요회는 낙원동 173번지 목조 2층 건물의 2층을 회관으로 사용했는데, 화요회로 명칭을 바꾸고 1925년 2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를 발기하면서 업무가 크게 늘어나자 같은해 4월 낙원동 289번지의 한옥 기와집으로 회관을 이전하였다.
참고 문헌 『동아일보』, 1925년 4월 13일, 「화요회 이전」.
김경재, 「김찬시대(金燦時代)의 화요회(火曜會)」, 『삼천리』7권 5호, 1935년 6월, 45~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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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낙원동 289
주소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9
도로명 주소
위치 고증 『삼천리』 7권 5호에 실린「김찬시대의 화요회」라는 글과 『동아일보』1925년 4월 13일자의 「화요회 이전」이라는 기사를 통해 당시 주소지와 관련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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