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조선물산장려회 회관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국내독립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청아빌딩이 그 자리에 들어서 있다. |
| 정의 | 물산장려운동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23년 8월부터 극도의 침체에 빠진 1924년 12월까지 조선물산장려회의 회관이 있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조선물산장려회 |
| 관련 인물 | 민영휘(閔泳徽) |
| 관련 내용 |
1923년 1월 20일 서울 낙원동 협성학교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출범한 조선물산장려회는 '산업 장려, 조선 산품의 애용, 경제적 지도' 등 3가지 활동방침을 수립하고, 일차적으로 토산품 애용에 중점을 둔 대중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회관 또한 민영휘(閔泳徽)의 기부로 1923년 8월 관훈동 30번지에 양옥 건물을 마련하였다. 그런데 '중산계급의 이기적 운동'이라는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이 제기되어 지식인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면서 시작한지 1년 만에 운동의 열기가 급속히 냉각되었다. 극도의 침체에 빠진 조선물산장려회는 1925년 10월 부흥총회를 개최하고 조직의 재건을 모색하였다. 이후 1929년 4월 제7회 정기총회에서 선전 계몽에 중점을 두었던 종전의 입장에서 벗어나 민족기업 육성을 위한 자료조사와 경영지도면을 고려해 새롭게 방향을 설정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1934년 무렵부터 재정난으로 다시 침체를 겪다가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었다. |
| 참고 문헌 |
『동아일보』 1923년 8월 9일, 「물산장려회에 가옥을 제공」. 『동아일보』 1924년 12월 17일, 「물산장려 확장, 견지동으로 이전」. 「조선물산장려회 이사회 회록」, 『조선물산장려회보』 10, 1930년 10월, 85~9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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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관훈동 30 |
|---|---|
| 주소 | 서울 종로구 관훈동 30-1 |
| 도로명 주소 |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 1923년 8월 9일자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조선물산장려회 이사회 회록」 등을 통해 확인한 물산장려회관의 주소지는 다음과 같다. 조선물산장려회관 터 : ①견지동 80(조선청년회연합회 회관, 1923.1), ②관훈동 30(1923.8), ③견지동 80(1924.12), ④황금정1정목 143(1925.10), ⑤경운동 96(1927.11), ⑥관훈동 197(1929.8), ⑦익선동 166(1929.11), ⑧낙원동 300(1931.9), ⑨수표정 42(1933.7) |














조선물산장려회 강연회
조선물산장려회관 터
물산장려운동 포스터
물산장려운동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