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기호흥학회 / 기호학교 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애국계몽운동 |
| 종류 | 건물 |
| 상태 | 멸실 / 현재 국군서울지구병원이 들어서 있다. |
| 정의 | 1908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교육계몽운동 단체인 기호흥학회와 기호학교가 있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서북학회/융희학교/호남학회/교남교육회/관동학회/중앙학회/중앙학교 |
| 관련 인물 | 이용직(李容稙) |
| 관련 내용 |
한말 교육구국운동은 을사늑약 체결 이후 서울에서 활동하던 지방출신 인사들에 의해 지방별 학회가 조직되고 전국 각지에 사립학교가 설립되면서 본격화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단체가 서북학회(西北學會)와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였다. 기호흥학회는 경기·충청지방의 교육진흥을 목적으로 1908년 1월 조직한 단체였다. 기호흥학회는 초대회장 이용직을 비롯한 임원 대부분이 전 현직 관료 출신들이라는 점에서 서북지방의 평민 출신 신흥 중간계급이 주축을 이룬 서북학회와 대비를 이루었다. 기호흥학회는 조직과 동시에 임시사무소를 한성부 북서 송현동 34통 3호 이재익의 집으로 정했다. 이후 5월 6일 한성부 북부 소격동 전 육군위생원 건물(현 국군서울지구병원 자리)을 빌려 사용하다가, 5월 18일 한성부 중부 교동 23통 1호의 전 법어학교 건물로, 다시 1909년 11월 4일에는 한성부 북부 대안동(현 종로구 화동) 2통 1호로 이전하였다. 기호흥학회는 경기도 6개군, 충청북도 4개군, 충청남도 7개군에 지회를 두고 학교 설립을 추진했는데,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가 부족한 교사의 충원이었다. 이에 1908년 6월 1일 기호학교를 설립하고 학교 교사로 전 학회 회관이었던 육군위생원 건물을 사용하게 했으며, 6월 20일 개교식을 거행하였다. 기호흥학교는 교사 양성을 위한 사범교육과 일반 중등교육을 실시하였다. 이후 기호학교는 1909년 11월 5일 기호흥학회의 신축회관인 대안동 2통 1호로 이전하였다. 1910년 9월 융희학교와 합병하였으며, 그해 11월 기호흥학회와 호남학회·교남교육회·관동학회가 중앙학회로 통합됨에 따라 기호학교도 중앙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
| 참고 문헌 |
『고종시대사』6, 1909년 12월 30일조, 국사편찬위원회, 1972, 941쪽. 『황성신문』1908년 5월 9일, '광고'. 『황성신문』1908년 6월 3일, '광고'. 『황성신문』1908년 8월 4일, '광고'. 「본회기사」, 『畿湖興學會月報』1, 1908.8, 44∼49쪽. 이현종, 「기호흥학회월보, 기호흥학회에 대하여」, 『사학연구』21, 국사편찬위원회, 1960, 301∼33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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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한성부 북부 소격동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소격동 165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0 |
| 위치 고증 | 『기호흥학회월보』제1호, 「본회기사」및 『황성신문』1908년 5월 9일자, 6월 3일자, 8월 4일자 등에 기호흥학회와 기호학교의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














기호흥학회 / 기호학교 터 - 현 국군서울지구병원
기호흥학회 / 기호학교
『기호흥학회월보』제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