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방정환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문화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국군서울지구병원과 북촌칼국수 사이 도로로 편입되어 있다. 이전에 살던 집(돈의동 83)도 역시 도로에 편입된 상태이다. |
| 정의 | 우리나라 소년운동의 개척자 방정환이 1931년 7월 과로로 요절할 당시 거주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청년구락부/천도교청년회/천도교소년회/색동회/소년운동협회/조선소년연합회/조선소년총동맹 |
| 관련 인물 | 김기전(金起田)/유광열(柳光烈)/이정호(李定鎬)/손용화(孫溶嬅) |
| 관련 내용 |
방정환(方定煥, 1899~1931)은 서울 출신으로 1913년 미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가정 사정으로 중퇴하고, 조선총독부 토지조사국에 취직하였다. 이후 천도교에 입교하여 1917년 손병희(孫秉熙)의 셋째딸 손용화와 결혼하고, 유광열 등과 함께 청년구락부를 조직하였다. 1918년 천도교에서 운영하던 보성법률상업학교 법과에 입학하였으며, 청년구락부의 기관지 『신청년』을 펴냈다. 3·1운동 때 등사판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1920년 일본 동양(東洋)대학 철학과 청강생으로 등록하고, 『개벽』지 도쿄[東京]특파원과 천도교청년회 도쿄지회장을 겸임하였다. 1921년 5월부터 방정환은 김기전·이정호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해 소년운동을 본격화하였다. 특히 1922년 5월 1일 처음으로 ‘어린이날’을 제정하여 이날을 크게 선전하였고 1923년 3월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는 한편, 아동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전국 각지에서 동화구연대회, 아동미술전람회, 소년문제강연회 등을 열어 어린이를 위한 운동과 소년운동단체의 통일을 꾀했고, 1925년 소년운동협회 지도위원, 1927년 조선소년연합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1928년 조선소년연합회가 사회주의 계열에 의해 조선소년총연맹으로 개편되자 위원장에서 물러나 『어린이』·『학생』 등의 편집에 힘썼다. 1931년 7월 과로로 병을 얻어 요절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서울여학생동맹휴교사건 검사신문조서) 최성반 신문조서(제2회)」;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51, 2002, 186~18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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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소격동 85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소격동 84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5길 78 |
| 위치 고증 | 「최성반 신문조서(제2회)」에 1931년 당시 방정환의 집주소가 기록되어 있다. |














방정환 집터 - ‘북촌칼국수’앞 북촌길
방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