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이인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국내독립운동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2007년 준공된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이 일대를 아우르며 들어서 있다. |
| 정의 | 일제시기 민족운동 변론으로 이름이 높았던 이인이 조선변호사협회 회장을 역임할 당시 살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
|---|---|
| 관련 조직 | 조선변호사협회/의열단/고려혁명당/통의부/정의부/신간회/수양동우회/흥농사/조선어학회 |
| 관련 인물 | |
| 관련 내용 | 이인(李仁, 1896∼1979)은 대구 출신으로 1913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18년 메이지[明治]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23년 일본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1923년 5월 경성에서 변호사를 개업 후 처음으로 맡은 변론이 의열단사건이었는데, 이를 계기로 6·10만세사건·고려혁명당사건·원산총파업·통의부사건·정의부사건·신간회민중대회사건·수양동우회사건 등과 각종 소작쟁의·필화사건 등 민족운동 관련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1930년 수원고등농업학교 학생들의 흥농사사건 때는 변론 내용이 불온하다 하여 6개월간 변호사 정직처분을 받았다. 1931년 조선변호사협회 회장에 선임되었다. 1942년 11월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해방후 제1, 3대 민의원과 대법관, 검찰총장, 법무장관 등을 역임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 참고 문헌 |
「법률전선 잡지 부정반포의 건(1929.1.25)」, 『사상문제에 관한 조사서류(6)』;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現代人名辭典(14) - 朝鮮辯護士協會長 李仁」, 『동광』제40호, 1933.1. 삼천리사, 『조선사상가총관』, 1933, 76쪽(『삼천리』제15권 제2호 부록).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청진동 175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종로1가 24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종로1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
| 위치 고증 | 「법률전선 잡지 부정반포의 건」과『조선사상가총관』에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














이인 집터 - 현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뒤 공원
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