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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정인보 집터

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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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지 분류 국내항일운동사적지
운동계열분류 문화운동
종류 가옥
상태 멸실 / 국민은행 건물이 들어서 있다.
정의 1930년대 조선학운동을 주도할 당시 정인보가 살았던 곳

관련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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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조선학운동
관련 조직 동제사(同濟社) 
관련 인물 이건방/백남운(白南雲)/홍명희(洪命熹)/문일평(文一平)/신채호(申采浩)/신규식(申圭植)/박은식(朴殷植)/조소앙(趙素昻)/안재홍(安在鴻)
관련 내용 정인보(鄭寅普, 1893~1950)는 서울의 소론 명문가에서 태어나 난곡 이건방 문하에서 경학과 양명학을 배웠다. 국권상실 후 중국으로 건너가 상해와 남경 등지를 오가며 신규식·박은식·신채호·조소앙·문일평·홍명희 등과 사귀었는데, 이때 중국인 학자 장병린의 국학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귀국 후 학문에 정진, 1923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여 한학과 역사학을 가르치는 한편, 『동아일보』와 『시대일보』 논설위원으로 참여하여 언론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1930년대 들어 『동아일보』에 「조선고전해제」(1931), 「 양명학연론」(1933), 「 5천년간의 조선의 얼」(1935) 등을 연재하고, 안재홍 등과 함께 다산 정약용 99주기 기념강연회(1934)와 서거 100주년제(1935), 『여유당전서』의 교열 간행(1934~38) 등을 주도하면서 조선학운동을 일으켰다. 이 무렵 그는 각종 강연과 집필을 통해 조선학의 정수로서 조선후기 실학을 부각시키고 조선의 ‘얼’을 강조하면서 일제 식민사관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이렇게 박은식·신채호가 기초를 닦은 우리나라 근대 민족주의 역사학을 계승·발전시키고 근·현대 학술사상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다가 중일전쟁이 발발하던 1937년 연희전문학교 교수직을 그만두고, 1940년 서울 창동으로 이거하여 은둔생활을 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문필가협회 초대 회장과 국학대학 학장, 대한민국정부 초대 감찰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 문헌 국가보훈처, 「공적조서」
『담원 정인보전집』1권, 연세대학교 출판부, 1983, 389~402쪽.
조동걸, 「연보를 통해 본 정인보와 백남운」, 『한국독립운동사연구』 5,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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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보

지역정보
당시 주소 경성부 수창동 198
주소 서울 종로구 내수동 167
도로명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3길 30
위치 고증 국가보훈처 「공적조서」와 『담원 정인보전집』 1권에 1933년부터 정인보가 살았던 집주소가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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