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별 · 작전별 사적지 현황
김상옥 집터
기본정보
| 사적지 분류 | 국내항일운동사적지 |
|---|---|
| 운동계열분류 | 의열투쟁 |
| 종류 | 가옥 |
| 상태 | 멸실 / 현재 벽담빌딩 앞 광장으로 바뀌었다. |
| 정의 | 3·1운동 이전 김상옥이 철물점을 운영할 당시 살았던 곳 |
관련정보
| 관련 사건 | 1923.1.12 종로경찰서 폭탄투척의거(김상옥의거) |
|---|---|
| 관련 조직 | 혁신단/암살단/의열단 |
| 관련 인물 | 김원봉(金元鳳) |
| 관련 내용 | 김상옥(金相玉, 1889~1923)은 1890년 동대문 안 어의동에서 영문 포수 김귀현(金貴鉉)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의동 보통학교와 YMCA학관을 나와 20세를 전후해 철물점 등을 경영했으며, 3·1운동에 참여한 뒤 비밀결사 혁신단(革新團)·암살단(暗殺團) 등에 가담했다가 1920년 10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였다. 1922년 겨울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이 구해준 포탄과 권총을 휴대하고 서울로 잠입한 후, 1923년 1월 12일 저녁 8시경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는 의거를 감행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을 피해 10여일 간 은신하던 김상옥은 1월 22일 아침 효제동에서 일제 경찰수색대와 교전 끝에 총에 맞아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 참고 문헌 |
「김상옥 공적조서」,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동아일보』, 1923년 3월 15일(호외), 「銃殺의 因으로 銃殺의 果를 結한 癸亥劈頭의 大事件眞相, 主謀者 金相玉이 被殺된 以後 連累者 八名은 被捉되야 起訴, 被殺者는 金相玉, 연루자 여덟 명은 임의기소」. |
*좌표를 클릭하시면 '길찾기'로 연결됩니다.
지역정보
| 당시 주소 | 경성부 창신동 487 |
|---|---|
| 주소 | 서울 종로구 창신동 464-6 |
| 도로명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294 |
| 위치 고증 | 『동아일보』 1923년 3월 15일자(호외) 기사에 관련 사실과 당시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














의거 당시 김상옥 집(『동아일보』, 1923년 3월 15일)
김상옥
김상옥 집터 - 현 동대문 로터리
김상옥 사건 관련 호외기사(『 동아일보』, 1923년 3월 15일)
김상옥 의사 순국지(『조선일보』, 1923년 3월 14일)